[광화문에서]권순활/‘벼락완장’의 그늘

  • 입력 2004년 8월 1일 19시 52분


40대 변호사 A씨는 얼마 전 권력기관에서 일하는 386 운동권 출신 두 명을 접대했다. 일로 알고 지내던 공기업 임원 B씨가 현직을 떠나게 돼 만든 자리였다. 이 정권 출범 후 권부(權府)에 들어간 두 사람은 B씨가 초대했다.

이제 갓 마흔에 접어든 386들은 한껏 호기를 부렸다. 마치 세상이 모두 자기들 손에 있는 양 큰소리를 쳤다. 곧 회갑을 바라보는 B씨는 ‘다음 자리’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연방 그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권력의 속성을 날카롭게 지적한 작품이다. 땅 투기로 돈을 번 졸부의 눈에 들어 저수지 감시원 완장을 찬 주인공은 마을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발버둥친다. 밑바닥 삶을 살아 온 그에게 완장의 매력은 달콤했지만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완장의 폐해’는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지금 집권세력도 그리 다를 리 없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하나 차이가 있다. 갑자기 완장을 찬 사람 중 ‘철 지난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고 그에 따른 그늘이 깊다는 것이다.

경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 한국경제를 짓누르는 핵심 변수는 순수 경제적 요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서 불안심리를 키웠다. 기업이 국내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가진 사람’들이 서둘러 외국으로 돈을 빼내는 것도 그 뿌리에는 좌파 포퓰리즘의 득세에 따른 우려가 깔려 있다.

정권의 주요 주주 격인 ‘정치 공학의 엘리트’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동지와 적의 이분법으로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이들과 코드를 맞춘 언론 노동 법조 교육 분야의 ‘새로운 완장’들의 기세도 거세다. 현 정권에 표를 몰아준 광주에서조차 “이러다가 공산당 사회가 되는 것 아닌가”라는 걱정이 나올 정도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가 잘 굴러가기를 기대한다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니르바나 접근 방식’이란 것이 있다. 니르바나란 범어(梵語)로 열반이란 뜻이다. 어떤 이상적 기준이나 규범과 비교해 현실의 불완전함을 지적하고 이를 고친다는 명목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태도를 말한다. 하지만 사회가 여기에 매몰될 때 더 참담한 실패가 기다린다.

우리 시대 ‘벼락 완장’들이 젊은 시절 독재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사회주의, 백보 양보해 주사파 이념에 기울었던 것조차 시대상황을 감안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퇴행적 이념의 찌꺼기를 지금도 버리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인다면, 하물며 정부 여당과 권력 외곽에서 총체적 하향평준화와 저질화의 방향으로 나라를 몰고 간다면 그것까지 눈감을 수는 없다. 가치 있는 것일수록 이를 지키려는 강인한 의지가 없으면 ‘진짜 같은 가짜’에게 무릎을 꿇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했던 민주주의가 이런 모습으로 타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하지만 한 줄기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완장들을 포함해 국민이 ‘길 잘못 든 이념’과 ‘우물 안 개구리’의 미망과 독선에서 깨어나 한국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훗날 한국사에서 결정적 추락의 시기로, 우리가 후손들에게 가난하고 약한 나라를 물려준 못난 조상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권순활 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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