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왕년엔 정수장학회 질타?

  • 입력 2004년 8월 2일 13시 54분


열린우리당은 2일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단장 조성래)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들어갔다.

조사의 핵심은 고(故) 김지태 부산일보 대표가 갖고있던 주식을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강압.불법적으로 빼앗았는지 여부.

하지만 이 문제는 정작 우리당 보다 전.현직 한나라당 의원들이 먼저 제기했으며 역대 국회에서 정수장학회의 '강압.불법적'인 주식환수까지 주장했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국회 회의록에 드러난 이들 의원의 지난 발언을 들춰보자.

▽“정수장학회가 솔직하게 뉘우칠 줄 알아야...” ▽

“오늘의 부산일보가 왜 이렇게 곪았느냐, 이걸 따져보려면 1962년 김지태씨 소유의 부산일보를 어떻게 해서 5.16장학회가 착취해갔느냐… 그걸 여기서 밝혀야 됩니다.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주식을 100% 가지고 있는 것, 그 과정은 잘못됐다, 이렇게 솔직하게 뉘우칠 줄 알아야 문제가 해결 됩니다.” (박관용 전 한나라당 의원, 1988. 7. 19 문화공보위 상임위 회의)

“정수장학회의 존재가 정당한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는 재검토해야 합니다. 정수장학회로부터 부당취득에 대한 환수조치는 법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것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 1993. 10.19 문화체육공보위원회 국정감사)

“방송개혁위원회는 MBC를 공영방송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민영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에 뿌리를 둔 정수장학회가 가진 30%의 소유지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명분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박성범 한나라당 의원, 1999. 3.15 문화관광위 상임위 회의)

“정수장학회가 가지고 있는 MBC 주식 30%의 인수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또 인수에 대한 방송문화진흥회의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1999. 10.13 문화관광위 국정감사)

▽“본래는 박근혜씨를 불러 물으려 했으나...” ▽

박계동 의원은 1993년 “이제 신정부가 들어섰으면 애매모호한 부분은 말끔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된다”며 위와 같이 발언하고 “5.16쿠데타의 주역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가 자녀들의 후사를 위해서 MBC 주식 30%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2년 뒤인 1995년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소환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본래는 이사장인 박근혜씨를 불러 정수장학회의 MBC 주식 30%의 환수대책을 물으려 했는데,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좀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고...”라고 말한 뒤 “다음 상임위에서는 강제구인 방식으로 박근혜씨가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하는...그런 보장을 해달라”고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또 남경필 의원은 1999년 국정감사에서 “제 질문에 대해서는 나머지는 다 서면으로 해주시고 정수장학회 주식 30% 인수문제만 장관이 직접 답변해달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들 의원 가운데 정수장학회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단연 박관용 전 국회의장.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의 당적을 거친 6선의 박 전 의원은 1988년 정수장학회 문제가 국회에서 처음 공론화됐을 당시 가장 먼저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정수장학회의 부산일보 지분 소유에 대한 집중 추궁이 이어졌던 1988년 7월 19일과 20일, 문교공보위원회 상임위의 회의록을 들여다보자.

▽“5.16장학회가 김지태씨의 주식을 착취”▽

이 날 상임위는 부산일보 파업사태 및 문화공보부 현황에 대해 당시 정한모 문화공보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언론사상 처음으로 신문 발행 중단 사태를 불러온 당시 부산일보 노조의 파업 원인을 캐물으면서, 의원들의 질의는 ‘정수장학회’를 향해 쏟아졌다.

당시 박관용 통일민주당 의원은 부산일보 보고에 이어 부처보고를 하려는 정 장관을 향해 “장관의 보고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김지태씨 소유의 부산일보를 5.16 장학회가 뺏어버린 과정부터 보고를 다시 하라” 며 말을 가로막았다.

박 의원은 “1962년 김지태씨 소유의 부산일보를 어떻게 해서 5.16장학회가 착취해갔느냐, 현재 정수재단의 이사는 누구누구냐, 이런 문제를 여기서 밝혀야 된다”며 “(회의)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이것을 거르고 여기서 다루지 않는 한 앞으로 언론정책은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의 질타도 이어졌다.

그러나 정한모 장관은 “부산일보 주식 기부는 문공부가 진행한 일이 아니라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박관용 의원은 정 장관의 답변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정수장학회의 설립이 부당하기 때문에 이것을 국민에게 환원한다거나... 기본적으로 이렇게만(이라도) 답변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인사개입까지▽

흥미로운 것은 당시 상임위에서 박관용 의원이 “김지태 부산일보 사장이 정수장학회에 낸 진정서 사본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

그는 당시 상임위에서 당시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5.16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인 박○○씨가 김지태씨를 밀수혐의로 형무소에 집어넣었다. 그 뒤 군사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1962년 6월 20일 계엄사령부 법무관실에 김씨를 불러놓고 손에 수갑을 채운 채 일방적으로 작성된 양도서를 가지고 와서 날인을 강요했다.”

이틀 뒤인 22일 상임위에서 박 의원은 자신의 상세한 정황묘사에 대해 “김지태씨가 1971년 5.16장학회에 낸 진정서를 (장학회측에) 요구해 사본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수장학회가 1980년대 중반까지 부산일보 인사에 개입한 사실도 확인됐다.역시 박관용 의원의 질의였다.

박 의원은 19일 상임위에서 “(정부가) 1986년 동아일보 언론통제 담당관 박○○을 부산일보 상무이사로 보낸 사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정한모 장관은 “그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진하고 협의 하에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정감사 단골 소재, 정수장학회▽

1988년 국회에서 처음 다뤄진 ‘정수장학회-부산일보’ 지분관계는 1990년대 들어 ‘정수장학회-MBC’ 지분문제로 번져 국정감사의 단골 소재가 됐다.

방송문화진흥회 70%, 정수장학회 30%로 구성된 MBC 소유지분 중 정수장학회 주식을 방송문화진흥회가 환수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금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지금 또다시 여야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박근혜 이사장과 정수장학회를 몰아세웠던 전.현직 한나라 의원들.

그들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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