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환자 복지시설 ‘성(聖)라자로 마을’의 원장으로 30년 동안 헌신한 고(故) 이경재 신부(1926∼1998)는 1990년대 초 중국을 다녀온 뒤 “사회주의는 희망이 없다”고 자주 말했다. 어느 복지시설엔 고아는 17명인데 교사와 보모가 80여명이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한국인들이 옌볜(延邊) 등지를 돌아다니며 “우리보다 몇십년은 뒤졌다. 고구려 때 만주 일대가 다 우리 땅이었다”고 기염을 토할 때였다.
▷지금 우리 국민은 희망을 갖고 사는가. 이달 초의 한 조사에서 10명 중 7명은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유는 경제 불황(36.2%) 정치 불안(36.1%) 순이었다.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책임은 대통령(41.7%) 여당(21.5%) 야당(11.8%) 순으로 크다는 응답이었다. 3명 중 1명은 ‘기회만 주어지면 이민 갈 의향이 있다’고 했다. 경제 불황보다 ‘희망 불황’이 더 심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시점 중국사회과학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중국인의 18%는 “나는 이미 상류층”이라고 답했고 64%는 “나도 사회의 상층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희망을 표시했다.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단이 틀려 보이지 않는 요즘의 두 나라 모습이다.
▷마오쩌둥(毛澤東) 고르바초프 덩샤오핑(鄧小平)을 풍자한 농담이 1990년대 중반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했다. 마오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했고, 고르비는 우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으며, 덩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쪽 깜빡이를 켜고 어느 쪽으로 회전하는 걸까. 아무튼 좌회전은 무늬만 ‘희망가’일 뿐 결코 ‘우리 승리하리라’가 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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