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출자총액 왜 못푸나

  • 입력 2004년 8월 10일 19시 13분


“내년엔 내수가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경제난을 돌파하려면 돈을 풀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내부 회의에서는 경제 난국의 돌파방안을 놓고 이런 얘기들이 자주 오가고 있다. 기획예산처가 경기 부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짠 내년도 예산 편성안을 퇴짜 놓고 열린우리당이 7조원 규모의 적자 국채를 더 찍기로 당론을 모은 것도 결국은 시중에 ‘실탄’을 풀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인식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와 홍재형(洪在馨) 정책위의장 김혁규(金爀珪) 규제개혁특위위원장이 9일 국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경제 살리기’를 위해 내년도 예산편성에서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상황 인식과는 동떨어진 목소리가 열린우리당 내에서 여전히 들리고 있다. 특히 당내 개혁그룹측은 투자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대기업 집단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단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재계나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의 의견에 대해 ‘개혁을 지향하는 당의 정체성에 어긋난다’며 극력 반대하고 있다.

이런 열린우리당 일각의 경직된 분위기를 지켜보면서 경기부양을 ‘발등의 불’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왜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그토록 인색한지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요 요인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출자총액제한이 이런 폐해를 막는 유효한 규제라는 점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이제 환란(換亂)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선진국에 버금갈 정도로 이중삼중의 견제장치를 해놓는 바람에 외국기업에 비해 역(逆)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빚’(적자국채)을 내서라도 경기를 살리겠다면서도 출자총액제한 제도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 자체를 터부시하는 듯한 여당 일각의 태도가 혹시 ‘개혁 지상주의’에 빠져 현실에 눈을 감는 자세는 아닌지 걱정된다.

최영해 정치부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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