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호사가들은 우리 시대의 도덕적인 타락을 한탄하면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을 역설한다. 그런데 과연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도덕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의 범죄율을 줄일 수 있을까? 이것은 다소 애매한 물음이다. 도덕교육이란 것이 기성세대의 가치기준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라면 학생들은 아마도 그것을 고리타분한 훈육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무엇이 우리 시대의 올바른 가치관인가? 또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도덕규범 같은 것이 있을까?
이런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미 윤리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윤리학은 도덕의 개념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도덕교육과는 다른 철학적인 작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매킨타이어는 위에서 우리가 제기한 첫 번째 물음과 비슷한 물음을 던지면서 책을 시작한다. 즉, 도덕 개념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우리의 도덕적 실천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철학자들은 긍정, 부정의 입장으로 대립해 왔다. 에이어와 같은 논리실증주의의 후예들은 소위 정서주의라고 해서 철학적 분석과 도덕적 실천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매킨타이어는 도덕 개념을 시대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 도움을 준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덕 이후’(After Virtue·1982년)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매킨타이어의 1966년 저작인 이 책은 매킨타이어 판 ‘윤리학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는 공동체주의의 대표자답게 이 책에서 보편적인 도덕적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그가 도덕적 담론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도덕의 언어’가 오로지 하나만 존재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도덕적 판단 및 실천과 관련해 우리시대에 필요한 지혜를 역사에서 얻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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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해서 루터, 스피노자, 칸트, 헤겔, 니체 등을 거쳐 스티븐슨, 헤어 등과 같은 오늘날의 도덕철학자들의 윤리학적 관점을 망라하고 있다. 구성만 놓고 보면 절반 이상을 그리스 철학자들의 좋음 혹은 옳음, 그리고 ‘현명하게 사려함’의 개념에 대한 서술로 채우다가 근대 이후로 넘어가서는 다소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매킨타이어는 한 순간도 도덕적인 어휘들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해방식은 없다는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 시대마다 도덕적 개념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나타나는지 면밀하게 논구하고 있다.
요컨대 그의 주장은 도덕적 판단과 관련한 모든 그릇된 절대주의의 주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범죄율을 낮추기 원한다면 도덕교육을 시키기보다는 매킨타이어를 따라서 도덕적 개념들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하도록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 적어도 도덕적 판단에 대한 고민을 하는 동안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 ‘A Short History of Ethics’.
이유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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