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은숙/금메달이 아니면 어떠랴

  • 입력 2004년 8월 15일 19시 06분


4년 만에 다시 지구인의 축제, 올림픽이 개막되었다. 화려하면서도 장중하게 고대 올림픽의 기원을 잘 살린 개막 행사를 TV를 통해 보고 있노라니 아, 당분간은 밤잠을 설치는 일이 적잖겠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여러 가지 상념이 밀려온다.

스포츠가 불러일으키는 본능적 열망은 때로는 위험할 정도다. 특히 축구와 같은 종목은 대리전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잠재된 공격 성향이 많이 드러나기도 한다. 훌리건으로 대표되는 광적인 팬들과 격렬한 게임 자체의 양상이 이런 점을 잘 말해 준다. 하지만 본원적으로 스포츠는 엄격한 룰과 그 속에서의 겨룸을 근간으로 한다. 건전한 경쟁과 결과의 승복 등 스포츠맨십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말의 의미 그대로 ‘타자와 어울리는 축제’가 될 수 없다.

▼올림픽과 경쟁의 원리▼

인류의 시선과 귀를 단단히 끌어 모으는 올림픽을 보고 있노라면, 각국 대표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에 평범한 삶을 사는 범인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육체의 아름다움과 불굴의 의지 앞에 생의 의욕이 솟구치는 것도 올림픽을 보는 망외의 소득이다. 그러나 올림픽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뭐니 해도 나와 핏줄을 나눈 우리 선수들이 분전하는 모습을 보는 데에서 비롯된다. 특히 세계 각국의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리 선수가 시상대에 오르기라도 하면, 전 국민이 환희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올림픽 기간에도 ‘올림픽 폐인’이 속출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사실 경쟁의 원리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자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경쟁 그 어느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놓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 경쟁이 없다면 어떤 선수가 그 어려운 훈련 과정의 아픔을 인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취욕이 생길 리 없다. 따라서 그 고독한 경쟁에서 승리한 메달리스트들에게 아주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할 일인 것처럼 보인다. 경제적인 보상뿐이랴.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형태의 보상이 함께 주어진다.

그런데 메달만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본말이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반드시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의 세계에는 승자보다는 패자가 더 많이 나오게 된다. 한 종목의 최종 승자는 한 명뿐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자다. 그러나 이런 결과론 때문에 실제로 절차탁마, 혼신의 힘을 다해 분투한 선수들에게 돌아갈 찬사가 아주 작아지게 되는 결과를 빚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참가의 의미 운운하는 것은 아주 자조적인 언사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고, 메달 가운데서도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우리 식의 조급증이 아주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1등이 너무 많은 영광을 갖게 되고 반대로 그 외의 선수들은 실의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본다.

▼꼴찌에게도 큰 박수를▼

올림픽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은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는 의미이므로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2등, 3등 아니 등외의 선수들에게도 또한 주목과 찬사를 보내야 한다. 경기 당시의 기량이 1등이어서 1등이 된 것이지, 게임의 우열이 삶의 우열은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승리 욕구와 1등 지상주의를 스포츠에서까지 보아야 한다면 서글픈 일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게임에서는 선수들간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십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비록 좋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을지라도 온 정성을 다했을 선수들에게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큰 박수를 보내기로 하자. 1등은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1등이 아닌 선수들은 ‘다르게’ 아름답다.

정은숙 ‘마음산책’ 출판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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