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현실로 다가온 '전쟁 후유증'

  • 입력 2004년 8월 18일 01시 13분


지난주 오랜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인 친구를 만났다.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조그만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동생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친구의 동생은 이라크 바그다드 공격의 선두로 투입됐던 미군 제82 공수여단 장병이었다.

친구는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동생과 동료들이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들은 우리가 이곳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친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상당수의 장병들은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가 현장의 처참한 광경을 컴퓨터에 저장해 돌아오고 있다. 동생의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사지가 찢겨 나간 시신들, 처참하게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진도 있었다. 동생이 내게 말했다. ‘우리가 왜 여기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채 그냥 그렇게 죽고 죽여야 했다’고….”

그의 동생과 동료들은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 바로 ‘적’이라는 공포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누구든 그들에게 ‘위협’일 수 있다는 강박관념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상당수는 그렇게 이성을 잃어 갔다.

친구의 동생은 최근 2주간의 휴가를 받아 집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흘을 앞당겨 기지로 자진 복귀했다. 의아해 하는 가족에게 그는 “형이나 부모님 때문이 아니다. 총도 없이 밖에 나가는 것이 불안해 견디기 힘들다. 누군가가 나를 해칠 것 같아 내 동료들과 함께 있고 싶다”며 묵묵히 짐을 챙겼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물었다. “정부가 심리치료 등 체계적인 관리를 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니냐.” 그는 냉소를 지으며 “국방부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이야기는 끊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문득 기자는 우리 자이툰 부대 장병들을 떠올렸다. 이라크 상황은 지금 ‘제2의 베트남’으로도 불린다. 우리 장병들도 살아남기 위해 어쩌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상처를 주고 또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할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상처와 후유증을 감싸 안아 줄 준비가 돼 있는 걸까.

김정안 국제부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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