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정책과 재정확대]<上>레이건式 감세 한국에서도 통할까

  • 입력 2004년 8월 24일 18시 55분


《여야가 과거사 문제 등을 둘러싼 정쟁의 이면에서 민생경제의 회생 방안을 놓고 모처럼 정책대결을 벌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재정확대를 주장하면서 부분 감세를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은 본격적인 감세를 실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다음달 정기국회에서 논란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두 정책의 실효성을 2회에 걸쳐 검증한다. 본보는 앞으로 주요정책에 대한 검증을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한나라당 조세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김정부·金政夫)는 최근 소득세법과 특별소비세법 조세제한특례법 등 10개 세법을 바꿔 세금을 낮추자는 방침을 정리했다. 대폭적인 감세로 소비활성화를 통한 내수 진작과 기업의 투자활성화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세수가 줄어드는 감세정책엔 기본적으론 부정적이다. 내년에 적극적인 확대재정정책을 펴기 위해서라도 감세로 재원 부담을 초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

▽한나라당의 감세안=본지가 단독 입수한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안)’은 △세금을 낼 수 없는 소득 최하위층엔 직접 보조방식을 통해 지원하고 △중하위 계층엔 소득세를 깎아주며 △중상위층에는 특별소비세 개편을 통해 소비활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을 정리했다.

또 고유가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휘발유와 경유 LPG 등 석유제품에 대한 세금을 국제유가가 안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평균 10% 인하(1조원가량의 혜택)하기로 했다.

중하위 소득생활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취사 난방을 위한 가정용 프로판의 특별소비세(현재 kg당 40원)를 대폭 인하 또는 폐지하고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학습지와 사설학원 교육비에 대해선 특별공제 혜택을 주는 안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상의 소기업과 자영업자 중 소득이 낮거나 매출액이 기준 이하인 성실 납세자에 대해선 한시적(2∼3년)으로 소득세를 면제하자는 것. 성실 납세자로 과세표준이 1000만원 미만일 경우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나라당은 또 소득세법을 고쳐 현재 과세표준 기준구간에 따라 9∼36%로 돼 있는 소득세율도 6∼33%로 낮춰 소득세 부담을 경감해주는 안도 추진키로 했다.

내수 진작을 위한 방안으로는 대중소비품목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감면하거나 폐지하고 사치품에 대해서만 과세하자는 것이 한나라당의 구상. 17대 총선에서 공약했던 대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현재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추는 안도 들어 있다.

이 밖에 현재 과세표준에 따라 15∼27%인 법인세를 10∼25%로 내리자고 제안했다. 법인세는 2005사업연도부터 13∼25%로 내리게 돼 있으나 이를 추가로 더 인하하자는 것. 또 연구개발투자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에 대해 4년 평균 연구 인력개발비 초과금액의 50%(중소기업은 60%)를 세액공제하거나 당해 연도 연구개발 인력비의 10%(중소기업은 20%)를 세액 공제하는 방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열린우리당 감세엔 ‘신중론’=열린우리당 정책위 김정수(金井洙) 전문위원은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감세 프로그램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재원만도 11조6000억원이 들기 때문에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감세정책은 부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므로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 다만 당내에선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위해 유류세 인하 등은 선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정부와 국회 청와대의 경상경비 지출액을 10% 줄이면 1조1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대형 국책사업의 일정을 재조정하거나 사업을 재검토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재원 조달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실효성 어떨까=감세정책은 1980년대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했던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으로 90년대 경제 호황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한국에서의 실효성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朴炯秀) 세수재정추계팀장은 “한나라당의 감세안은 전반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개인과 법인이 많아져 조세정책의 세계적 흐름인 ‘넓은 세원(稅源), 낮은 세율’ 체계와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소득세율을 1% 낮출 경우 약 1조원의 세수가 감소되고 법인세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1000만원 미만인 기업의 법인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면 연간 2700억원의 세수가 추가로 줄게 되므로 결국 부족한 재원이 문제라는 것.

하지만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정책을 반복해서 내놓는 바람에 고용 및 소득을 창출하는 효과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며 감세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2001년 이후 5차례 부분 감세…효과 미미▼

감세정책은 정책 시행 초기에는 정부의 재정 적자가 생기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점진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경기 활성화→공급 증가→세원 확대→세수 증가→재정적자 축소라는 선순환을 가져오기를 기대하는 조치다.

국내에서도 이를 염두에 두고 시행된 감세정책이 적잖다.

2001년 이후에만 특별소비세 인하가 3차례 있었고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조치도 1차례씩 시행됐다. 또 내년에는 법인세율을 2%포인트 인하하는 방안이 예고된 상태다.

그런데 이 같은 정책들이 선순환을 가져왔는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각각의 감세 조치가 시행된 시기의 경제 상황 등을 별도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서 소득공제나 특소세 한시 인하 정도를 시행했을 뿐 대규모 감세정책은 거의 없었던 점도 효과 검증을 어렵게 한다.

다만 법인세 인하와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효과는 기대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법인세율 인하에 대한 쟁점 분석’ 보고서는 “한국에서 법인세를 현재의 4분의 1 수준으로 인하할 경우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0.1%미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또 “감세정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의 크기는 ‘법인세 소득세 간접세(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의 순”이라며 “법인세 감세 조치에 대한 기대효과를 볼 때 나머지 세제의 인하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세연구원 김현숙 전문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 ‘기업의 조세부담이 투자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에서 “법인세를 1% 내리면 기업 설비투자가 0.131%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이 같은 수치가 세금 인하에 따른 재정 감소라는 비용을 감안할 때 효과적이었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최근 시행된 주요 감세 정책
구분주요 내용시행 시기
특별소비세 한시인하자동차 특소세율 7∼14%→5∼10% 인하,에어컨 등 기타 품목은 30% 인하2001년 12월
소득세 인하소득세율 10% 인하(10∼40%→9∼36%)2002년 1월
법인세 인하 법인세율 1%포인트 인하―과표 1억원 초과 28%→27%―과표 1억원 이하 16%→15%2002년 1월
특별소비세 인하자동차 특소세율 7∼14%→5∼10%로 인하, 에어컨 등 기타 품목은 20% 인하2003년 7월
특별소비세 한시 인하자동차 특소세율 20% 인하, 에어컨 등 기타 품목 30% 인하2004년 3∼12월

(자료:재정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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