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이 국내에 있고 싶게 하라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49분


이달 초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부자가 돈 안 쓰는 나라는 망한다. 부자가 돈을 써야 가난한 사람이 먹고 살 것이 생긴다”고 했다. 반(反)부자 정서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려 했던 걸까.

아무튼 ‘부자 기업’은 해외투자로 눈 돌리기 바쁘고, ‘개인 부자’의 해외 송금 또한 급증하고 있다. 해외동포들이 “한국이 더 살기 좋다”며 땀 흘려 번 돈을 들고 국내로 U턴하던 모습은 ‘과거사’가 돼 버렸다. 합법적인 재산 반출뿐 아니라 환(換)치기 수법 등을 동원한 불법 유출도 심각한 수준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합법이건 불법이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있다면 상당 부분 생산 및 소비 자금으로 쓰여 경제 활성화와 부(富)의 재분배에 한몫했을 돈이다.

국내 재산의 해외 탈출과 국가 경제의 추락은 쌍방향 인과관계를 갖거니와, 아직은 일부 남미국가의 그러한 전철을 밟는 단계는 아닐지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돈의 불법 유출만이라도 철저히 적발해 뿌리 뽑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탈북자를 다 막지 못하듯이, 단속만으론 한계가 있다. 외환거래 규모와 다양성으로 볼 때 사실상의 재산도피라 하더라도 합법적 투자로 둔갑한 돈은 묶어둘 방법도 없다.

결국 재산 해외 유출의 주요 원인을 없애는 것이 근본대책이다. 국내 투자와 소비를 꺼리게 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내 나라에선 내 돈 지키기 어렵겠다고 느끼게 하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해소시키며, 국내에서 배워도 얼마든지 잘살고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세워야 한다.

대통령이 ‘크게 성공한 사람’ ‘(서울) 강남사람’ 같은 분류법을 버리지 않고, “상류층은 내수 진작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흉내 내기 발언도 계속된다면 부자의 돈은 이렇게 응답할지 모른다. “그래? 그럼 물 건너가서 대접받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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