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철용/‘金행장 중징계’는 괘씸죄?

  • 입력 2004년 8월 30일 18시 52분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은 ‘돈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 장사꾼’을 자처한다. 그는 주가를 끌어올려 주주가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시장주의자이자 주주자본주의 신봉자이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그를 ‘한국 최고의 CEO’로 꼽는다.

김 행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경제 관료들은 “정부 정책에 너무 협조를 안 한다”고 원망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한국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통장을 갖고 있는 은행을 경영하면서 나라 경제는 거들떠보지 않고 자기 은행 잇속만 차린다”고 못마땅해 한다.

그동안 정부 입장을 지지하던 경제학자들도 최근 김 행장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중징계에 대해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많은 회계전문가들이 회계 처리에 일부 문제가 있지만 중징계를 내릴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금융감독원 회계감리위원회에서 참석자 절반이 반대했는데도 행장 연임이 불가능한 중징계를 내린 것은 김 행장의 연임을 막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계에는 김 행장이 LG카드 사태 초기에 LG카드 지원을 꺼려 정부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심지어 차기 국민은행장을 노린다는 PK(부산 경남지역) 출신 인사들의 이름까지 거명되고 있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개입주의 경제학의 시조(始祖)인 케인스는 ‘경제 관료가 통찰력 있고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정부 개입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며 “김 행장이 원만한 경제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도, (김 행장을 배제하려면) 사심을 버리고 여론이 수긍할 만한 이유와 절차를 택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국민은행은 한국에서 영업을 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지분이 전혀 없는 정부가 국민은행에 협조를 구하거나 압력을 넣을 수는 있다”면서 “이번 조치가 괘씸죄 차원이라면 정부는 신뢰를 잃어 앞으로 정부 개입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금융권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 경제부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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