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경제難 ‘속죄양 만들기’

  • 입력 2004년 9월 7일 19시 06분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MBC와의 대담에서 경제위기론을 조장한 책임을 언론에 다시 한번 물었다. 대통령은 “2001년 성장률이 3.8%였지만 우리 경제가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었다. 특히 경제가 곧 파탄날 것처럼 계속 보도돼 소비 진작을 위해 무리하게 부동산 규제를 다 풀고 카드가 남발되도록 방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과 올해의 경제난을 현 정부의 책임이 아닌 전임 DJ정부의 책임으로 돌렸다. 언론은 경제를 망친 부양책 교사(敎唆) 혐의를 뒤집어썼다.

대통령의 경제난 책임 떠넘기기가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인지, 정치적 목적에서 나왔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말대로 올바른 진단 없이 올바른 처방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우선 DJ정부는 언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부양책을 쓴 것이 아니었다. 언론에는 찬반양론이 모두 있었다. 동아일보는 ‘경제원칙을 지켜라’, ‘무리한 주가부양 화 부른다’, ‘과잉 경기부양을 경계한다’ 등의 사설을 통해 고통스럽더라도 시장원리에 따라 경제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단기부양책을 재촉한 사설은 한 건도 없었다. 대책 없이 경기를 낙관하다가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무리한 부양책을 들고 나온 것은 정부여당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물론 DJ정부의 부양책이 지금 우리 경제에 짐이 되고 있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난의 책임을 모두 떠넘겨도 될 정도는 아니다. 국내 투자와 소비의 위축, 일자리 부족, 그리고 부(富)와 설비의 해외 유출 등이 심화되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 정부와 무관하다고 보는가. 정권 핵심부와 정부측이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그 자체가 희망 잃은 국민을 더욱 절망케 하지 않을까.

성장과 분배, 성장과 개혁을 놓고 끊임없이 탁상공론하면서 구체적 방책도 없이 ‘여러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듯이 오락가락해 온 불투명한 정책 행태가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 한 요인이다. 기업경영권 보장보다는 노조 권력 확대를 두둔하는 경향, ‘불공정 거래’에 대한 마구잡이식 조사와 과징금 부과 등도 기업들이 공격적 투자보다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도록 몰아갔다. 전투하듯이 집값 잡기에 집착해 건설경기를 실종시켰고, 결국은 금융산업의 위험까지 증대시켰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편 가르는 정치적 언동을 일삼아 가진 자의 돈은 숨거나 도망가게 하고, 못 가진 자에겐 분배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대통령이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모습과 대비된다. 노 대통령은 후보 때 임기 동안 7% 성장을 약속했고, 17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6% 성장을 자신했다. 그랬던 대통령이 이제 와서 3∼5%대 성장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상위권이라고 한다면 숫제 성장률에 대해서는 평가하지도, 믿지도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래서는 장밋빛 로드맵이 250개 아니라 1000개라도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자기 책임을 분명히 하고 말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 경제위기론은 아무리 억눌러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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