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들은 “대의정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면서 “수도 이전, 보안법 폐지, 과거사 청산, 언론 개혁 등의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고 모든 국력을 경제와 안보 현안 해결에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정확한 시국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가 이토록 컸던 때가 없었다. 원로들은 “나라가 운동권 출신 386세대와 진보의 가면을 쓴 친북, 좌경, 반미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고까지 했다. 오죽하면 이런 극단적인 말을 했을까 싶어 참담할 뿐이다.
원로들의 말대로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들에 둘러싸여 국정 현안은 외면한 채 과거사 규명이라는 미명 아래 1940년대의 망령인 좌우 대립의 이념 갈등을 재현시켜 대한민국의 뿌리를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데만 열 올리고 있기”때문인지 대통령부터 답해야 할 것이다.
원로들은 또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일부 민간단체와 편파 TV 매체들의 도움을 얻어 친일 청산, 의문사 시비, 반미감정과 같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쟁점을 가지고 생업에 지쳐있는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놓았다”고 했다. 다수 국민이 공감할 지적이다.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이런 말이 나왔겠는가.
원로들의 우려는 “안보와 경제 영역에서의 좌경화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에 입각해 국민 화합의 토대를 구축하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라”는 주문으로 이어진다. 바른 방향이다. ‘좌경화’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비쳐진 것만으로도 반성해야 한다. 이 모든 혼란과 분열이 결국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불신 때문 아닌가.
1000명이 넘는 각계 원로들의 고언을 행여 보수 기득권층의 불만 표출쯤으로 폄훼하지 않기 바란다. 전쟁과 분단의 비극 속에서도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온 주역들이다. 독선(獨善)에 사로잡혀 몸에 약이 되는 쓴소리마저 외면한다면 이 정권에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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