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한 영국 정부는 스콧에게 ‘국민이 헷갈릴 우려가 있으니 사이트를 폐쇄하라’고 e메일을 보냈다. 스콧은 패러디를 보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응수했다. 이 ‘사건’은 영국인들 심리에 자리 잡은 공포와 편집증적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게 BBC 인터넷판의 전언이다. 패러디 사이트야 웃자고 만들었겠지만 영국 정부가 위기 때 행동 요령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홍보한 건 의미가 있다. 실제 위기 때는 상식과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연기가 자욱하면 그걸 피해 돌아갈 것 같지만 현실에선 외려 연기를 뚫고 헤쳐가려 애쓰는 게 한 예다.
▷미국은 9·11테러 발생 약 반년 후 테러 위협을 알리는 경보체제를 만들었다. 녹색부터 흰색 노란색 오렌지색 빨간색으로 위험도가 높아진다. 처음엔 시민들이 긴장했지만 이젠 ‘늑대 경보’가 아니냐며 ‘경보 피로증후군’을 보이는 추세다. 지난달 1일 한 단계 상승된 ‘코드 오렌지’는 민주당 전당대회 후 지지율이 오른 존 케리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정치적 카드가 아니냐는 시비도 분분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내놓았다. 관심(파랑)-주의(노랑)-경계(오렌지)-심각(빨강)의 단계별로 정부 부처 및 기관의 대응 방안이 담겼다. 안보 재난 핵심기반 등 3개 분야 30개 위기 유형에 대한 매뉴얼이 나왔지만 정작 현 시국이 어느 정도 심각한 위기상황인지에 대한 경종은 없다. 위기를 위기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위기관리’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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