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불어넣었음 마침내
바람으로 돌아가리.
…
홀로서 무한영원
별이 되어 탈지라도 말하리.
말할 수 있으리.
다만 너
살아 생전 살의 살 뼈의 뼈로 영혼 깊이 보듬어
후회없이
후회없이
사랑했노라고.
<흙과 바람-일부>
1998년 9월16일. 청록파의 마지막 생존시인이었던 혜산(兮山) 박두진 선생이 숙환으로 작고했다.
'살아 생전 살의 살 뼈의 뼈로 영혼 깊이 보듬어/ 후회없이/ 후회없이' 자연과 인간과 신을 노래하고 사랑했던 시인 박두진.
혜산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세상을 뜨기 직전 발표한 시 '흙과 바람'에서 '흙으로 빚어졌음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 바람으로 불어넣었음 마침내/ 바람으로 돌아가리'라고 읊었다.
일제 암흑기에서부터 우리 현대시의 전통을 올곧게 이어온 혜산. 그의 삶은 학처럼 깨끗했고 해처럼 뜨거웠다. 그는 소리나지 않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왔고, 넓고도 깊은 시의 숲을 이룬 거목으로 문단을 지탱해왔다.
그는 1939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에 '묘지송' '향현' '낙엽송' 등을 발표하면서 24세의 나이로 등단했다.
혜산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을유문화사에 입사해 조지훈 박목월을 만나게 되고, 1946년 이들과 청록집(靑鹿集)을 펴내면서 그의 시 세계에 중요한 거점이 된 청록파가 탄생하게 된다.
이후로 그는 마지막 시집 '폭양에 무릎을 끓고'에 이르기까지 60년 가까운 창작활동을 통해 1000여편의 시를 남겼다.
"시는 천계(天啓)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천계(天啓)다"라는 시론을 생전에 펴온 혜산. 그에게 시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자양(滋養)이자 절대자이자 이데아였다. 그는 후학들에게 "시는 기교나 재주가 아니라 그 정신의 청정함 옹골참 대참 같은 것"이라고 자주 말해왔다.
그는 팔순을 맞아 산문전집을 내면서 이렇게 적기도 했다.
"문인은 항상 옳음을 위해 발언해야 하며, 어떤 수난을 겪더라도 그 책무를 회피해선 안된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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