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980년 9월17일: 아동 심리학자 피아제 타계

  • 입력 2004년 9월 10일 11시 34분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아동 심리학자

1980년 9월17일.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아동 심리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장 피아제가 타계했다.

저명한 생물학자이기도 했던 피아제는 일생을 통해 지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획득되어지는가라는 인간의 인지 발달과정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당시 풍미하던 경험주의 인식론과 이에 의거한 교육이론을 단호히 배격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마음은 아무것도 씌여있지 않은 '깨끗한 석판'이며, 학습이란 단지 기성세대가 알고 있는 세계의 표상을 이 깨끗한 석판 위에 그려놓으면 된다는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피아제는 아이들이 성장 단계에 따라 고유한 인지능력을 갖는다는 '발생론적 인식론'을 통해 어린이를 '작은 어른'의 족쇄에서 해방시켰다.

♣"안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것"

장 피아제는 1896년 스위스의 뉴 샤텔에서 태어났다.

그는 11살 때 알비노라는 돌연변이 참새의 서식에 관한 글을 박물학 학술지에 기고하는 등 일찌감치 천재성을 나타냈다. 고교 시절에는 연체동물에 관한 논문을 써 과학자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때 그는 제네바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부터 연체동물연구부의 관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라 응할 수 없다"고 정중히 사양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연현상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새, 물고기 등의 행동양식을 연구했던 그는 특히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고 배워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아이들의 놀이를 외부세계와의 상호작용, 즉 자신을 환경에 동화시키거나 스스로를 조절함으로써 균형을 잡아가는 역동적인 '자기구성'의 과정으로 이해했다.

피아제에게 인지한다는 것은 이미 '있는' '주어진' 세계의 표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세계를 창조해가는 과정이었다. 사람이나 새, 곤충이 그 종(種)에 따라 사물을 바라볼 때 빛의 스펙트럼이 서로 다르듯, 인식 주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구조와 패턴에 따라 외부세계를 다른 형상으로 생성한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그에게 안다는 것은 바로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최고의 지식인' 반열에

현대적 인식론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피아제. 그의 이론은 구미의 철학 심리학 교육학 언어학 사회학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최근에는 최첨단 과학분야인 사이버네틱스의 핵심원리로 원용되기에 이른다.

2000년 벽두,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은 그를 앨버트 아이슈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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