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93년9월24일: 이멜다, 법정에 서다

  • 입력 2004년 9월 10일 11시 41분


"나는 밤에도 꿈을 꾸지만 낮에도 꿈을 꾼다. 그것은 현실이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실주의자다…."

1933년 9월24일.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미망인 이멜다가 수뢰 독직 등 90여건의 부패혐의로 필리핀 법정에 섰다. 병적인 사치를 뜻하는 '이멜디픽(imeldific)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그가 마침내 마르코스 독재 21년의 미망(迷妄)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이름을 따 '카크로반의 장미'로 불리었던 이멜다. 그는 미스 마닐라 출신 가운데 가장 빼어난 미인으로 꼽힌다.

1954년 마르코스는 이멜다를 처음 보고 뛰어난 미모와 '35-24-35'의 몸매에 넋을 놓는다. 이멜다가 그에게 메론을 건네며 "씨가 있어 드시기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마르코스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이 메론의 씨에는 무언지 알 수 없는 마력이 있는 것 같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는 재선에 성공한 뒤 계엄령 선포와 다섯 번에 걸친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를 겸하는 절대권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 배후에는 이멜다의 채워지는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멜다는 정부 요직 중 가장 이권이 많은 마닐라 시장과 주택건설부장관을 겸했다.

이멜다는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측근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공공사업에서 15%의 커미션을 챙겨 남편 마르코스에게 '미스터 15%'란 오명을 안겨주었다.

89년 하와이로 망명할 당시 말라카냥 대통령 궁에 남아있던 1200여 켤레의 구두는 그야말로 '이멜디픽'한 것이었다. 그는 쇼핑을 할 때마다 수천만원씩 뿌리고 다녔으며, 그때마다 "나는 고독하다"고 내뱉곤 했다.

부정축재와 극도의 사치행각으로 국부(國富)를 축낸 장본인이었지만, 세상이 바뀌자 2001년 2월 이멜다가 마닐라 인근 마리키나시에 구두박물관을 열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리키나시는 사양길을 걷던 이곳의 신발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멜다의 구두'를 절실히 필요로 했고, 박물관이 들어서자마자 이곳은 일약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그는 박물관 개관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구두를 소유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나는 구두를 신을 때마다 아직 남편이 대통령이란 느낌을 받는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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