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48기 국수전, 바둑의 깊이

  • 입력 2004년 9월 12일 18시 06분


조훈현 9단은 최근 40여년 바둑 인생을 정리한 전기(傳記) ‘전신 조훈현, 나는 바둑을 상상한다’를 냈다. 그는 이 책에서 “바둑돌을 처음 잡은 이래 수만 판을 둬 왔으나 바둑의 19로(路)는 여전히 미궁”이라고 술회했다.

천재 기사로 손꼽히는 그도 바둑의 심오한 원리를 깨치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그는 “바둑의 깊이를 알기 위해 지금도 도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상급 프로기사를 만날 때마다 바둑의 신(神)과 대국을 한다면 몇 점을 놓아야 반드시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3, 4점이라고 답한다.

아마추어의 눈에는 바둑판의 삼라만상을 꿰뚫고 있는 것 같은 정상급 프로기사도 바둑판의 귀퉁이에서 놀다 가는 것일지 모른다. 그만큼 바둑의 깊이는 헤아릴 길이 없다.

2000년 이후 두 대국자의 역대 전적은 44기 국수전 예선에서 만나 조 9단이 승리를 거둔 것이 유일하다.

흑 1, 3은 요즘 보기 드문 대각선 포석.

흑 7의 협공이 조 9단다운 수다. 좌변 ‘가’에 벌리면 무난하지만 이처럼 적극적으로 두는 것이 조 9단의 스타일이다.

흑 9도 조 9단의 스타일. 조 9단은 이런 장면에서 흑 5 한 점을 내버려 두는 법이 없다.

흑 5 한 점을 버리고 다른 큰 곳을 발 빠르게 선점하는 작전도 가능하지만 조 9단은 ‘한 점이 아까워서’ 도저히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조 9단의 바둑에선 백 16까지의 모양이 자주 나온다.

흑 15는 참고도 흑 1처럼 먼저 공격할 수도 있지만 백 2, 4로 뛴 뒤 6으로 두면 흑도 피곤해진다. 백은 언제든지 ‘A’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반상은 조용하다. 하지만 백 22로 걸친 게 심상치 않다. 양건 7단은 백 22 대신 ‘나’에 걸치면 밋밋한 바둑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비튼 한 수 때문에 상변에선 치열한 몸싸움을 벌어지기 시작한다.

해설=김승준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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