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만 하더라도 폐지보다 개정 쪽 지지율이 높아 절반을 넘었다. 국보법의 폐해와 존속의 필요성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현 정권은 그동안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反)민주적이라고 매도하고, 자신들만이 역사와 시대정신에 투철한 것처럼 행동해 왔는데 이제라도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수도 이전에 대해서도 67.6%가 “민생이 급하므로 우선적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고, 과거사 규명도 52.6%가 “이념 갈등만 재연시키고 있는 것”으로 봤다. 반면 열에 아홉은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이 역점을 둬야 할 분야로 경제회복을 꼽았다. 이것이 곧 민심이다.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국정의 우선순위다. 이를 외면한다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집권세력이 여전히 자신들의 틀만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각계 원로급 인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반응은 한 예다. “나라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이념이나 과거보다는 경제와 민생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는 그들의 당부에 대해 “시대착오적 발언” “원래 그런 분들이니까…” 하는 냉소적인 말들이 나왔다고 한다. 용납하기 어려운 태도다. 설령 생각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그럴수록 경청하고 수렴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구나 민심의 큰 방향도 시국선언과 궤를 같이하고 있지 않은가.
현 정권은 이른바 참여정부다. 참여는 적극적인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다. 국민의 의사를 가장 존중하고,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가능한 한 폭넓게 수렴하는 정부다. 그런 정부가 확인된 국민의 의사마저 무시하거나, 반대 세력의 발목잡기쯤으로 생각한다면 더는 참여정부라고 할 수 없다. 민심이 왜 이렇게 사나워졌는지에 대한 반성조차 할 줄 모르는 정부라면 과거 권위주의 정부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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