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 상황 인식과 대응 방법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9명 가까운 88.2%가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며 장단기 정책 과제 선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포럼과 별도로 세계경영연구원이 국내외 경제학자 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52.2%가 한국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분배 우선주의 등 정치적 방향성의 불안’을 지적했다.
금리나 환율 등 주요 경제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기업인들이 정치권 동향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게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오죽하면 CEO포럼 총회에 참석한 한 기업인은 “아침에 신문을 보기가 두렵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을지 겁이 난다”고 말했을까.
돌이켜보면 이 같은 지적은 작년 이후 꾸준히 나왔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똑같은 설문조사 결과가 반복돼 생산되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더욱이 정치 사회적 불안의 중심에 서 있는 대통령의 경제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는 듯하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5일 MBC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제보좌관에게 이 정부 들어 기업에 불리한 정책, 좌파적 정책이 있으면 내놓아 보라고 하자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업인은 물론 경제학자들도 정책 방향이 문제라며 걱정하는데도 국정 총괄 책임자는 오히려 반박만 하는 셈이다.
글로벌 경쟁은 글로벌 정책을 요구하는데도 ‘그들만의 개혁’과 ‘소모적인 정쟁(政爭)’에만 매달린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이미 한국은 1995년 이후 약 10년이나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걸려 있다. 노 대통령이 말한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야 하는 낡은 유물’이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고기정 경제부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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