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은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예방을 받고 “나라가 분열되고 편 가르기가 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모든 문제를 갈라서 생각하는 남남(南南) 분열이 큰 걱정”이라면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법장 스님도 조계사로 찾아온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방침을 설명하자 “아무리 좋은 것도 대중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고 있으면 좋은 것이 못 된다”며 부정적 인식을 내비쳤다. 스님은 또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서도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전 의장의 사퇴를 볼 때 “아무리 (처벌 목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벌어진 것 아니냐”고 우려를 나타났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거론한 마당에 김 추기경과 법장 스님이 이런 쓴소리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여권과 진보 진영의 분위기를 이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두 원로는 진보 진영의 비판이 쏟아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더 이상 두고 봐서는 안 된다는 소명의식에서 어렵게 입을 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나 열린우리당은 이들의 고언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 여론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기에 몰두하고 있는 여권은 오히려 두 원로의 발언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은 집권 전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현재 여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군사독재시절 종교계 원로들의 시국 관련 발언을 방패삼아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당시에는 김 추기경 등의 정부 비판 발언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였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더 늦기 전에 두 원로의 충고대로 국민통합에 나서는 게 나라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김차수 문화부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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