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여자’를 제외한 모든 영장류의 암컷은 가슴이 평평하다.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나 약간 부풀어 오를 뿐, 사람처럼 평소에도 봉긋한 반구(半球) 형태를 갖고 있는 가슴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자의 가슴을 해부해 보면 실제 모유 생산과 관련 있는 샘 조직 부위는 작다. 가슴이 작을수록 수유 자세도 편해진다. 가슴이 큰 엄마는 오히려 아기가 질식하지 않도록 가슴살을 눌러줘야 한다. 이런 점은 여자의 가슴 모양이 ‘양육 기능’과는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여자의 가슴은 이런 형태로 진화한 걸까?
저자는 “여자는 수많은 점에서 신체적으로 남자보다 한걸음 더 진화했으며 그 신체적 특징에는 성(性)과 출산이라는 측면에서 특수하게 진화한 부분이 많다”고 주장한다.
앞서 가슴의 예도 그렇다.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게 되면서 엉덩이가 보내던 성적 신호를 앞쪽에서는 볼 수 없게 되자 가슴이 엉덩이를 모방해 두개의 반구 모양으로 진화했다는 것.
이 책은 ‘털 없는 원숭이’로 잘 알려진 저자의 최신작이다. ‘털 없는 원숭이’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동물행동학과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여자의 몸을 바라봤다. 여자의 몸을 목, 어깨, 허리, 골반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22개 신체 부위의 특징과 진화 과정을 훑었다. 또 배꼽 피어싱, 눈 화장 등 신체를 꾸미는 의미도 분석했다.
여자 몸의 진화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여자의 몸은 어린아이의 신체적인 특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 원시 사회에서 사냥을 위한 ‘소모품’이었던 남자에 비해 출산을 담당했던 여자는 훨씬 중요한 존재여서 보호를 받아야 했으며, 여자의 몸이 아기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면 될수록 남자로부터 더 많은 보호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여자는 성대가 13mm로 남자(18mm)보다 짧고, 후두도 남자의 70%밖에 되지 않아 어린아이 목소리에 가까운 고음을 내는 것도 한 예다.
각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여성의 몸이 어떻게 강조되고 억눌려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귀는 피부가 구멍을 중심으로 늘어져 있는 모습 탓에 많은 문화권에서 여자의 성기를 상징했다. 힌두교에서는 태양신 수리야의 아들 카르나가 어머니 쿤티의 귀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 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다리 사이에 달린 귀’는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다.
이처럼 귀가 여자의 성기를 상징한 탓에 고대 이집트에서는 간통을 한 여자의 귀를 날카로운 칼로 잘랐고, 일부 문화권에서는 할례의 의미로 여자의 귀에 손상을 가하기도 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