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설사 화폐제도 개편의 필요성이 있더라도 화폐단위 변경보다는 5만원이나 10만원권 화폐 등 고액권 발행을 선호한다. 특히 내수 중심의 기업들은 화폐단위 변경에 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농심의 관계자는 “화폐단위를 100분의 1, 또는 1000분의 1로 낮추게 되면 과자, 라면 등 저가품의 경우 구매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택가격 등이 크게 줄어든 듯한 ‘착시(錯視)효과’로 소비성향이 감소하고 단기적으로는 일상 거래에서 화폐가치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소비를 꺼려 제품 판매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대기아자동차 고위 관계자는 “개인들이 현금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화폐단위 변경 움직임은 부유층 사이에서 자칫 ‘화폐 개혁’으로 받아들여져 자금유출이 더 커질 수도 있다”며 “이 경우 현금보다 ‘실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져 부동산 쪽으로 돈이 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임복순(任福淳) 유통물류팀장은 “화폐단위 변경의 효과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지만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기에 주는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면서 “화폐단위 변경보다는 경제의 충격을 줄이면서 소비심리 활성화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10만원권 화폐 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팀장은 이어 “이헌재(李憲宰) 경제 부총리가 ‘무제한 교환 원칙’을 밝혔지만 부유층 사이에서는 돈을 쉽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이는 고소득층의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또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일시적 화폐 부족 현상으로 소비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각에서는 화폐단위 변경이 해외 자금거래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 자금담당 관계자는 “수출을 할 때 미국이나 유럽은 한국에 비해 화폐단위가 1000배 수준이어서 거래하는 데 상당히 불편한 만큼 대외 거래가 많은 수출기업에는 다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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