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국보법에 대해선 여야 모두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공통분모도 많다.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조항은 살리면서 인권 침해의 소지가 높은 독소조항은 고치거나 없애야 한다는 틀에서 견해차가 많이 좁혀졌다. 실제로 여야는 그동안 이런 차원에서 공감대를 찾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국보법 폐지 주장을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후 여야는 폐지 여부를 놓고 정면충돌로 치달았고, 각계 인사의 찬반 성명이 줄을 잇는 등 국론도 급격하게 분열되고 있다. ‘내용’을 어떻게 손질하느냐는 본질적인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국보법을 폐지해야 하느냐, 유지해야 하느냐의 ‘명분 싸움’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지난 주말만 해도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둘로 나뉘어 서울 도심에서 국보법 폐지 찬반(贊反) 집회를 열었다. 이 같은 대책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앞으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사생결단 식의 소모적 편 가르기는 이제 그만 접어야 한다. 여권은 박 대표의 ‘국보법 유연성’ 발언을 협상의 손짓으로 읽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집착하던 법의 명칭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마당인데 더 주저할 이유가 있는가.
중요한 것은 법의 문패(門牌)가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이다. 명분 싸움에서 벗어나면 여야가 얼마든지 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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