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죽어가는 환자의 공포와 불안을 줄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옳은가. 교수가 추천서를 쓸 때 우수하지 않은 학생을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도덕적인가. 기자는 부패를 폭로하기 위해 취재원에게 신분을 속여도 괜찮은가. 보크가 제기하는 이러한 질문들은 거짓말이 우리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알려준다.
▷보크가 중요하게 취급하는 거짓말의 하나는 공직자의 기만적 행위다. 1960년 미국인들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U-2기 사건에 대해 거짓말한 사실을 알고는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였다. 그는 국민을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 뒤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으며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1975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69%의 미국인은 정치 지도자들이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닉슨은 거짓말 때문에 자리를 물러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그 후 미국 사회에서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한 관용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우리 사회는 비교적 공직자의 거짓말에 관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 사수(死守) 약속을 깨고도 10년을 더 집권했고, 박정희 장군은 민정이양 공약을 백지화한 뒤 18년을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근거 없는 의원들의 기획폭로회견은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나마 최근 정치인의 발언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보도가 증가하는 점은 다행이다. 보크는 계획적 거짓말이 가장 나쁘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러한 거짓말은 솎아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재경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jklee@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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