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李부총리의 ‘입단속’

  • 입력 2004년 9월 19일 19시 05분


“금융기관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마당에 금융기관들이 출자한 연구기관에서 자꾸 거대 담론을 끌고 나온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8일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전날(17일)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학술토론회를 언급하면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 부총리는 “좌파니 사이비니 하면서 담론을 자꾸 키우면 답은 도덕성 등 그런 쪽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며 “금융연구기관은 논의의 초점을 좁혀 좀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연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반(反)시장적인 경제정책을 양산한다고 비판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이 부총리의 발언은 직접적으로는 ‘금융기관들이 출자한’ 금융연구원을 거론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최근 잇따르고 있는 비판을 겨냥한 경고 메시지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부총리의 말처럼 학자나 연구기관들이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거대 담론’을 놓고 논쟁하는 것은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거대 담론’을 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배경이다. 최근 거대 담론의 ‘자양분’을 제공한 것은 대체로 현 집권세력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사유재산권과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 체제의 기본을 건드리는 이슈가 자주 제기됐다.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가 지금처럼 주목받았던 적이 없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를 경우 학자나 연구기관의 행동반경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요즘 민간경제연구소에 어떤 정책사안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면 “말하기 곤란하다”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연구원은 “정부 입장에서 거북스러운 내용이 있다고 해도 학술토론회의 다양한 견해는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 앞으로 여권과 정부가 이처럼 ‘다른 목소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사회적 공론의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종식 경제부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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