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7단은 중반 이후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백 106에 7분, 110에 25분, 116에 4분, 118에 13분, 124에 7분을 썼다.
양 7단도 역전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하귀 흑을 노리고 있으나 ‘나 잡아봐라’고 하는 흑의 배짱을 응징하기 어렵다.
양 7단의 장고는 일종의 지연 작전. 정상적인 수순을 밟으면 역전은 어렵다. 이를 아는 양 7단은 장고를 거듭함으로써 조훈현 9단이 자만에 빠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유리한 형세에 마음이 풀어진 흑이 느슨하게 두면 그것을 발판으로 역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백은 50대에 들어선 조 9단의 체력이 떨어질 때를 노리고 있다. 조 9단은 오후 4, 5시경에 이르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다. 체력 저하는 집중력 감소로 이어져 평상시라면 충분히 볼 수 있는 수를 놓친다.
여느 스포츠 경기처럼 바둑에서도 체력은 기량만큼 중요한 요소다. 기사들은 종일 앉아 두는 대국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제한시간 5시간의 바둑에서 마지막 초읽기까지 다투는 승부를 벌이면 몸무게가 2∼3kg씩 빠진다고 한다.
백은 106으로 우상귀 흑진을 건드려본다. 양 7단도 수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곳의 돌을 이용해 우변에 세를 쌓아 우하귀 흑을 잡으려는 것이다. 흑 109로 참고도 흑 1로 받으면 백 14까지 수가 난다.
그러나 조 9단의 체력은 아직 바닥나지 않았다. 백은 118, 120으로 흑의 근거를 빼앗았지만 흑은 121, 123으로 가볍게 탈출한다. 이로써 하변 흑은 우변과 좌중앙 등 두 곳과 연결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양 7단의 걱정은 갈수록 깊어간다.
해설=김승준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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