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하다가 은퇴한 최모씨(63)는 시제(時祭)에 참례한 문중 사람들에게 이름표를 달아 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국에서 100여명의 일가(一家)가 모이지만 서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한자(漢子)로 이름을 쓰고, 괄호 안에는 항렬(行列)과 생년월일을 쓴 이름표를 달아 줬더니 다들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항렬 따라 이름 짓는 경우가 드물어 이름표를 보고 쉽게 자신의 뿌리를 확인했을 것이다.
추석 때는 역시 이런 얘기라야 어울린다. 하루쯤은 조상을 기리는 날 아닌가. 차례상에 올리는 밤(栗) 대추(棗) 감(枾)도 다 내력이 있다. 밤을 심으면 자라서 큰 나무가 된 뒤에도 땅속의 씨밤은 썩지 않고 남아 있다. 이 씨밤처럼 조상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대추는 꽃마다 열매를 맺기 때문에 후손의 번창함을, 감은 가지를 찢어서 접을 붙여야만 감다운 감이 열리기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조상의 슬기가 새삼 경이롭다.
벌초 얘기로 돌아가자. 요즘은 대개 예초기라는 풀 깎는 기계를 쓰지만 나씨는 낫도 함께 쓴다. 묘 주변은 예초기를 쓰지만 봉분만은 누워 계신 조상님들이 “이놈, 어디다 기계를 대느냐”고 할 것 같아 차마 쓰지 못 한다는 것이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벌초는 시골 친척에게 맡기고, 차 막힌다는 이유로 추석 1, 2주 전에 잠깐 묘소에 다녀오기 예사인 나로서는 면구스러울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하는 식으로 자위해 왔지만 가슴 한구석의 죄의식은 어쩔 수 없었다.
얘기는 과거사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부터 궁금한 게 많았다. 예를 들면 문중 벌초를 하는데 과거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새롭게 판정받은 선대의 묘는 벌초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선대가 설령 역사에 한 점 흠을 남겼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자신의 뿌리를 부정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울면서 낫을 들어 풀을 벨지언정 차마 그렇게는 못하리라.
이맘때, 이런 자리에선 늘 그렇듯이 화제는, 누구 집안이 산소 관리를 잘하더라, 도시로 나간 그 집 자손이 크게 성공했는데 묘를 잘 쓴 덕이라고 하더라는 쪽으로 흘러갔지만 거듭 확인한 것은 조상에 대한 끝 모를 자부심이었다. 누구였건, 무엇을 했건, 조상은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모두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주변 386 참모들에게 흰 장갑을 한 켤레씩 사주면서 벌초를 권하면 어떨까. 관념 속의 조상이 아닌 선산에 누워 있는 ‘실재’하는 조상의 봉분을 다듬으면서 과연 우리는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한번쯤 묻게 하면 어떨까. 일주일 뒤면 추석이다.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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