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리디노미네이션 하긴 합니까?

  • 입력 2004년 9월 22일 18시 40분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하는 말을 보면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부유층 고객들의 불안감만 커졌습니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 대해 금융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화폐단위 변경을 둘러싼 혼선은 정책 당국의 모호한 태도에서 시작됐다.

이달 초까지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한가하게 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추진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

하지만 지난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 부총리는 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화폐단위 변경은) 연구단계를 지나 구체적 검토의 초기단계에 와 있다”고 답변했다. 정부가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화폐단위 변경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확정된 바 없다”며 다시 애매한 입장으로 후퇴했다.

재경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 부총리 발언은)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 성의 차원의 답변이었을 것”이라는 ‘황당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재경부는 21일 ‘한은이 구체적인 시행안을 마련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를 부인하는 해명자료까지 내놓았다. 해명자료는 “현재까지 제도 도입을 전제하여 검토한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도입을 하겠다는 것인지,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해명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처럼 애매한 입장을 지속할 경우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투기가 번질 수 있고 자본의 해외 유출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화폐단위 변경이 부유층의 재산 파악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화폐단위 변경 논란이라는 악재를 추가한 꼴이 되고 말았다.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하려면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현 정부는 유난히 로드맵을 내세우기 좋아하지 않는가. 화폐단위 변경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입장과 논의 절차, 시행시기 등을 담은 로드맵을 국민 앞에 내놔야 한다.

신치영 경제부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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