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태훈]“국감때 보자”는 與의원

  • 입력 2004년 9월 23일 18시 34분


“국감에서 봅시다.”

22일 서울시청 3층 서울시장실 옆 접견실.

서울시의 수도 이전 반대 시위 지원 논란과 관련해 시청을 항의 방문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이춘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에게 호통을 쳤다. 의원들은 “국감 준비 잘해야 할 거요”라고 겁을 주며 시청을 떠났다.

이런 장면을 지켜본 기자는 한편으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들에게 국감은 과연 무엇인가.

국감은 입법과 더불어 국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위임한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공무원들이 1년간 제대로 일을 했는지 면밀히 살피는 ‘감시의 장’인 것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며, 공평무사한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날 의원들의 발언은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게 느껴졌다. 국감을 신성한 감시의 장이 아니라 마치 본때를 보여 주는 ‘분풀이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권위주의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한 열린우리당 간부는 이명박 시장이 주한 스위스대사에게 명예시민증을 전달하고 있던 행사장 문을 밀치면서 “이명박 어디 있어, 나와!”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사실 20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폭로에서부터 이날 항의 방문까지의 절차도 예전에 익숙하게 보아 온 수순이다. 힘 있는 정당의 간부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폭로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 소속 국회의원들이 몰려가 ‘융단폭격’으로 초토화하는 전략이 그대로 되풀이된 것.

이 시장의 행동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오래전에 일정이 잡힌 행사가 있다는 이유로 의원들에게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아무리 외교사절과의 행사가 있다고 해도 잠깐 양해를 구하고 나와 의원들에게 직접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시장실 앞에서 국회의원들을 막아선 서울시의원들에게 “여러분의 심정은 알지만 이런 식으로 국회의원들에게 결례를 해선 안 된다”고 설득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낡은 행태나 거대 도시 수장의 옹졸한 대응이 지켜보는 사람을 실망시키기는 마찬가지였다.

황태훈 사회부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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