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범진]과거가 그렇게 부끄러운가

  • 입력 2004년 9월 23일 18시 34분


건국 후 우리 역사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보면 한국은 부끄러운 나라에 속할는지 모른다. 대부분 임기 중 또는 임기 후 불운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부정선거로 쫓겨났고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동료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후 모두 쿠데타 당시의 유혈사태와 거액 비자금 은닉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功에는 눈감고 過만 강조▼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집권한 김영삼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이란 지탄을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 중 비서실장 2명과 아들 2명이 비리문제로 감옥에 가는 등 부패정권으로 국민의 비난을 샀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이 모두 실패했다는 시각만으로 과거를 평가하면 한국의 오늘은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달성한 압축성장의 대표적인 나라다. 이는 역대 대통령의 긍정적 치적의 축적이 가져온 결과로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은 광복 후 좌우대립 속에서 좌익을 제압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가장 큰 공로자다. 6·25전쟁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도 그의 공로다. 박 대통령은 유신독재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우리를 가난에서 해방시키고 오늘의 한국경제를 일으킨 지도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은 현재 박 대통령을 평생 민주화 투쟁을 한 두 김 대통령보다 높게 평가한다.

전·노 대통령의 집권 12년은 제2차 오일쇼크의 후유증을 조기에 극복하고 1인당 국민소득을 1600달러 수준에서 72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린 경제 도약기였으며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의 민주화는 양 김의 집권으로 결정적 진전을 이룩했으며 보다 공고화됐음을 국민 모두가 느끼고 있다.

모든 대통령은 재임 중 공과가 있게 마련이다. 잘못이 있었다 해서 공까지 깡그리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과(過)만 보고 과거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역사단절론이다. 새로 집권하는 세력은 역사단절론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자기들의 새로운 시대를 돋보이게 하려면 과거를 단죄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지도자였던 두 김 대통령도 역사단절론의 유혹을 받았다. 두 김 대통령은 모두 취임 첫 3·1절 기념사에서 자신의 정부만이 상하이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받은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건국을 부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논리대로라면, 초대 이 대통령 아래서 6·25전쟁 때 목숨을 바쳐 싸운 사람들은 어느 나라를 위해 죽었다는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과거사 진상규명 노력도 역사단절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긍정적 유산은 외면하고 과만 들춰내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일종의 자학사관(自虐史觀)이다. 우리는 과거를 평가하되 공과 과를 구분해 공은 계승 발전시키고 과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역사단절론으로는 결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역사단절論은 미래 못열어▼

이 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1968년부터 10년간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혁명 기간에 중국 지도층의 상당수가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변방으로 쫓겨났다. 문혁이 끝나고 그렇게 핍박받던 세력이 집권해 오늘의 중국을 이끌고 있으나 그들은 자신을 학대한 마오를 부분적으로 비판했어도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 마오는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공이 70%라면 과는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오의 동상은 지금도 중국 곳곳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역사 단절이 과연 현명한 길이며 미래를 열어나가는 길인가.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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