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살아 돌아온 서양史

  • 입력 2004년 9월 24일 16시 10분


뉴턴과 다윈이 함께 묻혀 있는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 내부. 이곳은 신이 움직이는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려 했던 뉴턴과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의 이질성을 하나로 포용한 공간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사진제공 푸른역사
뉴턴과 다윈이 함께 묻혀 있는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 내부. 이곳은 신이 움직이는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려 했던 뉴턴과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의 이질성을 하나로 포용한 공간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사진제공 푸른역사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윌리엄 L 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796쪽 3만1000원 푸른역사

1788년 2월 13일, 런던에서 열린 인도총독을 지낸 워런 헤이스팅스에 대한 탄핵재판은 서양 근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다고들 한다.

사건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은 매우 영국적이었지만, 최근에 벌어진 한국의 대통령 탄핵 사건과 통하는 점도 없지 않다. 처음에는 탄핵이 ‘대세’였다가 막판에 그것이 반전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탄핵 대상이었던 인도총독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악랄한 착취자라기도 하고, 식민지 인도를 발전시킨 정의로운 행정가였다는 증언도 있었다.

어쨌든 이 재판은 제국주의를 도마에 올린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는데, 20세기 패전국의 전범자들을 사법처리할 때마다 교과서 노릇을 하였다. 놀랍게도 그 재판은 아직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서양사 개설서들은 이 사건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를 읽는 맛이 쏠쏠한 이유는 이처럼 새로운 지식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랭어 교수는 웨지우드, 플럼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역사가들과 함께 엮은 이 책을 통해 서양사의 줄기를 새로이 정리했다. 일반적인 서양사 개설서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최대한 압축하여 서술하기에 급급하다. 그 결과, 역사적 사실은 본래의 생명을 잃은 채 박제품처럼 기억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전통에 맞서 조용하지만 힘차게 반기를 꺼내들었다.

19세기의 천재적인 엔지니어 브루넬에 대한 이 책의 서술을 예로 들어보자. 브루넬은 터널 철도 조선 등 여러 분야에 정통한 기술자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철도 노선을 완성했으며, 가장 크고 빠른 대양 항해 쾌속선을 건조했다. ‘근대사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역동적인 인물’이었던 셈인데, 그의 활동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눈길을 끈다. 요컨대 이 책은 통념적인 역사지식의 한계를 넘어서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엄선된 주제들에 관한 세부적인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개설서에서 생략되기 일쑤인 역사적인 여러 문제와 설명’들을 접하는 맛이 각별하다.

해외 관광의 효시라 할 18세기 유럽 귀족들의 호화로운 여행 풍속, 근대유럽을 향해 개방의 물꼬를 튼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현대에도 살아 있는 계몽주의 사상의 역사적 의미 및 신화로 화석화된 혁명가 트로츠키 등 이 책에 실린 17편의 에세이는 중층적이고 심층적 분석으로 호기심 많은 독자들을 역사의 숲으로 안내한다.

매끄러운 번역도 돋보인다. 원문의 여러 대목을 보충하고, 독자들이 이 책을 더욱 깊이 읽을 수 있도록 상세한 주도 곁들였다. 원서에 없는 그림 자료도 많이 추가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접하는 서양 근현대사가 생생하다.

백승종 독일 베를린자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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