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멋진 하루’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데뷔작이다. 천성적인 유머 감각과 뛰어난 인물 창조력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그녀는 광고대행사, 영화관 등에서 일하다 마흔여섯 나이에 낸 첫 단편 ‘멋진 하루’로 일본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어른들의 코미디’다.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줄거리와 개성 있는 인물들을 내세워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녀의 미덕은 보통사람들이 가진 쩨쩨하고 치졸한 면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순수한 사람들을 그린다는 것. 장기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본 서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우리의 현재 모습과 겹쳐져 낯설지 않다.
‘멋진 하루’의 줄거리는 30대 후반 유키에가 오래 전 애인 도모로에게 빌려준 돈 20만엔을 받으러 갔다가 아예 도모로와 함께 돈을 빌리러 다닌다는 설정이다. 당장 돈을 갚으라는 유키에의 성화에 도모로는 자신의 현재 애인들인 이혼녀, 주부는 물론 친척들까지 순례하며 유키에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는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그럴 법한 이야기로 요리해 내는 작가의 재치와 입담은 우리가 흔히 옳다고 믿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우선 도모로의 캐릭터다. 아침부터 슬롯머신에 빠져 사는 백수지만 얼굴과 표정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다. 애인한테 돈을 빌리고 달아나 버리는 철면피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다. 이혼녀 앞에서 비굴한 표정으로 돈을 빌리는 자신을 구박하는 유키에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자신의 애인)는 통이 큰 여장부라서 도와 달라는 말에 약해. 남을 위해 한번 쓰는 게 쾌감인 거야.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면 그 사람도 기분 좋게 돈을 내놓게 돼. 어차피 돈을 빌릴 거라면 상대방이 빌려주길 잘했다고 생각할 만한 그런 연출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유키에, 마음먹기 달렸어. 세상은.”
결국 유키에가 도모로에게 돌려받은 것은 돈이 아니라 그의 낙천성과 유연함이었다. 이 단편집에 소개된 남자 주인공들은 이혼 당하고, 애인에게 차이고, 회사에선 잘린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들과 이래저래 얽혀서 갖은 고생을 겪어야 하는 주인공들(대개 여자들)이 처한 암담한 상황은 기가 찰 정도다. 그런데도 주인공들은 마냥 씩씩하다. 한심하지만 불쌍하지 않다. 그들이 벌이는 한바탕 희극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과 페이소스가 함께 버무려진 삶의 풍경이 어느 인간사회나 다르지 않음이 느껴진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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