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불신과 체념이 계속되면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47분


영동고속도로의 여주∼문막 구간은 상습 정체 구간이다. 차가 몰리는 명절이나 주말에는 거의 예외가 없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그랬다. 편도 4차로의 도로가 여주부터 2차로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주 근처에는 커다란 전광판이 등장한다. 이 구간이 막히니 국도 42호선으로 우회하라는 안내다.

순간적으로 갈등이 생긴다. 우회도로 안내가 나오는 데도 많은 차량들이 막히는 고속도로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도로 가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국도로 가보니 전혀 막힘이 없다. 시원스레 뚫린 자동차 전용도로가 기대 이상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문막∼여주 구간은 역시 막혔다.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안동 등지에서 오는 차들이 합류하기 때문이다. 안내 전광판이 번쩍이지만 우회하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의문이 든다. 사람들은 왜 막히는 고속도로를 고집할까. 한국도로공사는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길은 막혀 있는데 번쩍이는 전광판을 보지 못했을까. 전광판을 봤더라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 때문이리라.

혹시 통행료가 더 비싼 걸까. 서울에서 강릉까지 소형차 통행료는 우회하나 안 하나 똑같이 9300원이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안내하는 대로 가봤자 그게 그거라는 경험이 있었던 걸까. 그쪽도 막힐 것이라는 체념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런 결론을 내렸다. 첫째 운전자들이 우회도로에 대해 잘 모르고, 둘째 고속도로 안내를 믿지 못한 데다, 셋째 어디로 가도 막힐 거라는 체념 때문이라고.

우선 홍보 부족은 당장은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 서울의 버스 개혁이 좋은 예다. 초기에는 노선도 모르고 어느 버스를 타야 할지 몰랐지만 이젠 버스가 편리하다는 사람이 주위에 많아졌다.

문제는 불신과 체념이다. 우리 경제는 꽉 막힌 고속도로를 연상케 한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교육정책 등이 그런 사례다. 우리 경제가 그렇게 나쁘지 않고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노무현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현 정권 임기 중에 경제가 회복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아예 체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책 효과를 내기도 힘들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작년에는 올해 상반기에 경기가 회복된다고 했다가 이젠 내년에도 회복이 어렵다고 한다. 대학입시 방식을 바꾼다고 했다가 곧 취소하는 정부를 믿을 수 있을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고 하면서 각종 신도시 건설 발표로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고 있는 게 이 정부다. 그런데도 남의 탓을 하고 있는 정부를 보고 체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장관도 없다.

불신과 체념이 확산되는 한 경제는 나아지기 어렵고 회복하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리게 된다. 체념 다음에는 ‘한국식 장기침체’가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손도 쓸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기 전에 정부는 체념하는 국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지금의 경제팀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숙고해야 할 것이다.

박영균 경제부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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