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벼락 國監’ 재고해야

  • 입력 2004년 10월 8일 18시 13분


코멘트
한때 국정감사가 폐지됐던 적이 있다. 독재시대의 일이다. 국감이 효율적 국정운영을 방해하고 정국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국회가 행정부의 시녀에 불과했던 그 당시에 감히 국회가 행정부를 감사하는 제도가 온전히 보전될 리 없었다.

▼행정부 견제 대신 政爭도구로▼

민주화로 5공화국이 거(去)하고 현행 헌법체제가 등장하면서 국감제도가 부활했다.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뜻하는 쾌거라고 찬사가 쏟아졌다. 행정부의 위세에 눌려 움츠려 있던 국회가 드디어 기지개를 켜고 입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찾으며 권력 균형을 도모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렇다.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우리가 곧잘 망각하는데, 국감의 기본 정신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 및 국회-행정부간 권력 균형이다. 현대사회에서 독주하기 쉬운 비대한 행정부에 적절한 제동을 가하고 정책 사안들과 관련해 국회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국감이 재도입됐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다수당과 소수당이 합심해야 한다. 그들간의 정책 대결은 법안심사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지 국감으로까지 확산되어선 곤란하다. 행정부 견제라는 국감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요즘 상황은 어떤가. 국감이 정당간의 전면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대통령의 소속 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행정부의 각종 정책 실패를 비판하기보다는 한나라당의 정책 입장 또는 이념 노선을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예상 대권주자들을 흠집 내는 데에 큰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행정부의 구체적 정책이나 운영에 대한 감사보다는 여당 및 정권 자체의 정체성과 노선에 대한 공세에 더 주력하고 있다. 당 소속 인사가 장으로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국감 받을 때는 입장을 바꿔 두둔하기에 바쁘다. 여야 의원들간에 극렬한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심지어 윤리위 제소나 고발사태까지 생길 기세다.

국감이 이처럼 행정부 견제라는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여야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장관은 국회의원도 겸직하므로 그들이 속한 여당의 동료 의원들로서는 자연히 행정부처 비판보다는 편들기에 가세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문제보다는 비정상적 정당정치가 보다 근원적 문제일 것이다. 여야 공히 권력지상주의에 빠져 국감을 권력 유지나 획득을 위한 총체적 장기적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하려 하고, 개별 의원은 획일적 정당 기율에 구속돼 소속당의 첨병 역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기존의 국감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1년 중 20일 동안만 모든 의원들이 동원돼 거의 대부분의 행정부처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다. 이처럼 단기에 일제히 감사를 실시하는 방식은 사안 하나하나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정책대안 제시보다는 여야간 집합적 전면적 정치공방에 더 적합하다.

▼상임위별 수시감사 시도해볼만▼

그러므로 우선 국감 방식이라도 바꿔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정당정치가 민주화되고 유연해진다면 기존 방식으로도 실질적인 행정부 견제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정치의 변화는 너무도 복잡한 문제인 만큼 쉽게 기대할 수 없다. 반면에 방식 개선은 상대적으로 용이하므로 우선 시도할 만하다. 예를 들어, 필요에 따라 수시로 특정 행정부처만 해당 상임위가 집중적으로 감사 또는 조사하는 방식은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여야간 정치 전면전보다는 구체적 정책감사가 이뤄질 여지가 커질 것이다. 이를 통해 상임위가 활성화될 수 있고, 국회는 행정부 견제 권한을 십분 활용하며 진정한 삼권분립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도개선은 근본책이 될 수 없다. 수많은 제도개혁을 거쳐본 한국정치사가 이를 말해 준다. 그래도 국감의 현주소가 워낙 실망스럽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로운 방식을 떠올려 본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