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 안보용 국가기밀’ 될 수 있다

  • 입력 2004년 10월 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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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부 야당 의원들의 군사기밀 누설 논란에 대한 대응책으로 앞으로 국가기밀 자료의 국정감사 제출을 거부키로 한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나 정부 활동의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법에 따라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기밀은 내놓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밀 분류 권한을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결정으로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까지도 ‘기밀’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 평소 정보 공개를 꺼려 온 정부 부처로서는 그럴 개연성이 크다.

국감의 효율성에 대한 일부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국감은 여전히 행정부의 비정(秕政)과 실정(失政)을 들춰 내는 주요한 제도적 장치다. 그런 국감에서조차 충분한 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알 권리는 물론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와 균형’ 기능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자료 제출 거부가 능사는 아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기밀 관리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아직도 냉전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기밀 등급을 과잉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안보와 외교에 대한 초당적 대처를 위해 여야가 기밀을 공유하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은 없는지 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군사기밀보호법만 하더라도 국가안보와 이익에 미칠 위험에 따라 ‘치명적인 위험’은 1급, ‘현저한 위험’은 2급, ‘상당한 위험’은 3급 비밀로 나누고 있지만 명확한 구별이 쉽지 않아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고 하지 않는가.

안보를 정쟁(政爭)의 도구로 삼는다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야당도 신중치 못한 한건주의식 폭로는 삼가야 한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국가기밀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더 큰 잘못이다. 이럴 경우 ‘정권 안보용 국가기밀’이 양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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