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48기 국수전…탁원한 형세판단

  • 입력 2004년 10월 11일 18시 27분


원성진 5단에게는 답답한 국면이다. 형세가 불리한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형세를 뒤엎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중앙은 흑과 백의 세력이 마주 보고 있으니 절반씩 나눠 가지게 된다. 좌하귀 우하귀 좌상귀에서는 눈 감고 둘 수 있는 수순이 예정돼 있다. 프로 기사들은 이럴 때 ‘반상이 좁다’고 한다.

이창호 9단이 우상귀 백 ○를 버린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약 백 ○를 살렸다면 중앙 백이 미생마가 됐을 것이고 이것이 공격받으면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 9단은 화려함보다 안전을 택했고 그것이 확실하게 이기는 길이었다.

14분의 장고 끝에 나온 흑 105는 느린 듯하지만 힘을 비축하는 수. 원성진 5단 특유의 감각이다. 원 5단은 여느 기사들이 보지 못하는 두터운 곳을 찾아내는 후각이 발달해있다. 흑 105는 좌변 백진에 갇힌 흑 한 점이 움직이는 뒷맛을 노리자는 뜻이다.

백은 106으로 중앙 백을 한번 더 보강해 완생을 확인한다.

흑 109가 수순을 비틀어 백을 유인하려는 책략. 흑 105의 효과로 좌변 백 진을 어느 정도 깼지만, 후수를 잡아 백에게 109 언저리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래서 흑 109를 먼저 둬 이곳을 선수로 처리한 뒤 좌변으로 가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9단은 용의주도하다. 흑의 뜻을 간파하고 백 110으로 좌변을 보강한다. ‘백의 승리’가 확보된다면 약간의 손실은 감수하겠다는 것. 이로써 모든 변수가 사라졌다.

흑 123으로 참고도 흑 1로 둬 귀를 지키고 싶지만 백 2로 들여다보는 한 방이 듣는다. 백은 8까지 중앙을 두텁게 막아 만족스럽다.

백 130으로 큰 끝내기가 끝났다. 흑은 덤을 낼 수 없다. 이후 백은 흑의 무리수를 조금씩 응징해 차이를 더 벌렸다. 백 8집반승. 이후 수순은 총보.

해설=김승준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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