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 흑과 백의 세력이 마주 보고 있으니 절반씩 나눠 가지게 된다. 좌하귀 우하귀 좌상귀에서는 눈 감고 둘 수 있는 수순이 예정돼 있다. 프로 기사들은 이럴 때 ‘반상이 좁다’고 한다.
이창호 9단이 우상귀 백 ○를 버린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약 백 ○를 살렸다면 중앙 백이 미생마가 됐을 것이고 이것이 공격받으면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 9단은 화려함보다 안전을 택했고 그것이 확실하게 이기는 길이었다.
14분의 장고 끝에 나온 흑 105는 느린 듯하지만 힘을 비축하는 수. 원성진 5단 특유의 감각이다. 원 5단은 여느 기사들이 보지 못하는 두터운 곳을 찾아내는 후각이 발달해있다. 흑 105는 좌변 백진에 갇힌 흑 한 점이 움직이는 뒷맛을 노리자는 뜻이다.
백은 106으로 중앙 백을 한번 더 보강해 완생을 확인한다.
흑 109가 수순을 비틀어 백을 유인하려는 책략. 흑 105의 효과로 좌변 백 진을 어느 정도 깼지만, 후수를 잡아 백에게 109 언저리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래서 흑 109를 먼저 둬 이곳을 선수로 처리한 뒤 좌변으로 가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9단은 용의주도하다. 흑의 뜻을 간파하고 백 110으로 좌변을 보강한다. ‘백의 승리’가 확보된다면 약간의 손실은 감수하겠다는 것. 이로써 모든 변수가 사라졌다.
흑 123으로 참고도 흑 1로 둬 귀를 지키고 싶지만 백 2로 들여다보는 한 방이 듣는다. 백은 8까지 중앙을 두텁게 막아 만족스럽다.
백 130으로 큰 끝내기가 끝났다. 흑은 덤을 낼 수 없다. 이후 백은 흑의 무리수를 조금씩 응징해 차이를 더 벌렸다. 백 8집반승. 이후 수순은 총보.
해설=김승준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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