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화합위한 ‘과거사 규명’▼
그리고 이 법에 따라 국가기관으로 설치될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정리를 위한 여권의 이러한 노력은 이미 제출된 친일진상규명법의 개정안과 논의가 진행 중인 친일파 재산환수를 위한 법안 마련 등과 맥을 같이한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물론 경제 불안, 국민 분열을 이유로 지금이 적기가 아니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여권의 집착에는 한국사회의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경제 불안, 국민 분열의 우려를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냐에 있다. 진실규명과 화해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1976∼1982년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통해 3만6000명 이상의 사망 또는 실종자를 낳았다. 1983년의 민주화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부분적으로 이뤄졌지만, 당시 가해자인 지배세력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들과 이에 저항하는 군부세력 사이의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남아공의 경우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용서와 화해를 앞세운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을 통해 350년간 지속돼 온 인종차별정책이 종식되고 국민적 통합이 달성됐다. 백인지배 하의 남아공에서 인구의 70%나 되는 흑인은 국토면적의 13%에 갇혀 투표권도 없이 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은 물론이다. 만델라도 44세에서 72세까지 27년간 감옥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는 백인 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투투 주교로 하여금 이 위원회를 이끌도록 하면서 백인들뿐 아니라 자신이 이끌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잘못까지도 조사하는 것을 허용했다.
우리에게도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 근대민족국가의 형성에 실패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분단과 좌우대립의 아픔을 맛보았으며,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인권탄압의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를 아르헨티나나 남아공과 비교하면 성공한 역사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룩했으며, 민주화도 성공적으로 이룩했다. 남북분단의 상황에서도 독재에 의한 희생자는 아르헨티나나 남아공에 비해 훨씬 적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규명과 화해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에 또다시 부끄러운 역사를 남길 것이다.
▼성공여부 위원회 人選에 달려▼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과거사 정리를 절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과거에 대한 복수나 세력 교체의 기회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소리만 요란할 뿐 한 마리의 토끼도 잡지 못하는 우를 범할 것이다. 둘째, 새롭게 설립될 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들은 대다수 국민이 볼 때 합당하고 존경받는 인물들이 임명돼야 한다. 한국 현대사의 양면을 균형감을 갖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맡아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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