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 입력 2004년 10월 15일 17시 35분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김태형 지음/127쪽 7000원 문학동네

좀 장황스럽다 싶을 정도로 긴 표제로 되어 있는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는 김태형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1992년부터 ‘현대시세계’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시인은 1995년 첫 번째 시집 ‘로큰롤 헤븐’을 내놓은 바 있다.

‘히말라야시다’는 아시다시피 이국종 침엽수의 일종이다. 이 시집에서 ‘히말라야시다’라는 나무는 시인의 또 다른 자아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처절한 삶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하는) 그런 존재로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다.

다른 시인들의 경우 이 같은 나무들을 시 속에 수용할 때 나무의 생명성과 수직적 상승이 지니는 희망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곤 한다. 그러나 김태형의 경우 오히려 그 반대일 정도로 이 나무들의 이미지는 들끓는 슬픔의 절정에 가 닿아 있다. 황량한 자아 그 자체의 또 다른 모습으로 있다. ‘두 그루 저녁 나무’에서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런 것이다 침엽수림은, 몇 가닥 실핏줄로 발 시리도록 기다린다는 거/종일토록 한자리에 나앉은 침엽수림은 나는/차갑게 타오르는 얼음 불꽃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러고 보면 저러한 ‘침엽수림’은 동시에 삶의 처절함에 직면한 인고의 한 징표이기도 하다. 이러함은 또 다른 나무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동백이 지고 나면’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껏 피었다가는 못내 뭉텅뭉텅 쓰린 제 붉은 목 떨어뜨리는/그때가 비로소 너의 절정이라는 걸/슬픔에 겨워 저리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바닥치기로 떨어뜨린 목 고이 눈감은 채/나를 증명하려고 오지는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파국까지 몰아가는(‘붉은 목 떨어뜨리는’) 슬픔의 절정을 읽는다. (목숨 잃고) 바닥 치는 꽃잎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다. 여기까지 그의 슬픔과 동행하고 보면 그러나 알게 되는 게 있다. 절망의 절망은 결국 극복이며 희망이라는 일반적인 논리가 있지 않은가.

그는 저러한 처절한 싸움 틈틈이 인고와 정화의 긍정적인 물질인 ‘소금’을 시집 곳곳에 이미지로 꽃 피우고 있다. 시 ‘배롱나무 시인’에서는 그의 시로서는 드물게 신선한 생동의 세계를 슬며시 열어 놓고 있기도 하다. ‘배롱나무 시인’의 한 대목을 보자. 그의 궁극의 세계를 암시받을 수 있다.

‘생애 첫 방학을 마친 듯한 어린 초등학생이 걸어갔다/배롱나무 곁을 빗방울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남은 꽃향기가 지나간 아이의 작은 발자국마다 잘박잘박 고여 들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얼마나 신선한가. 그의 시는 소금, 상처의 꽃이었다.

정진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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