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보법 폐지’ 여당案에 반대한다

  • 입력 2004년 10월 18일 18시 11분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마련한 ‘국가보안법 폐지 및 형법 보완안’은 국보법을 지탱하던 골격을 사실상 해체한 것에 가깝다. 이렇게 허술한 법률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친북 활동이나 간첩 행위를 과연 제대로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고는 하지만 북한은 ‘외국’이 아니고 ‘외국인 단체’도 아니어서 법리적으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고무 찬양, 잠입 탈출, 회합 통신 죄는 대안(代案)도 마련하지 않고 빼 버렸다. 여당안(案)대로라면 내란목적단체의 지령을 받은 것이 아닌 한 안보 위해(危害) 활동을 하더라도 처벌하기 어렵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찬양해도 어쩔 수 없게 된다. 현재의 여당안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에 대처하기에 여러 면에서 미흡하다.

여당의 진보 성향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우리 당 지지자들의 정서와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이 중요하다”며 국보법 폐지를 주장했다고 한다. 국민 전체의 여론과 정서를 살피지 않고 소수의 진보세력만 의식하는 386의원들의 행태는 용납되기 어렵다. 국가안보와 국가경영은 민주화운동 시절의 ‘대학 동아리’와는 다르다.

선진 민주국가도 국가안보를 위해하는 행위에는 엄격하게 대처한다. 자유와 민주는 그것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들까지 보호할 수 없다. 전쟁을 겪은 분단국가에서 일방적으로 국보법의 무장해제를 하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 검찰을 비롯한 공안기관 내부에서도 이런 법률로는 간첩 잡기 어렵다고 우려하지 않는가.

국보법이 인권 침해와 정권 유지 도구로 이용된 불행한 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이제 국보법의 인권 침해를 용납할 수준을 훨씬 넘었다. 민주화 이후 독소조항들은 대부분 삭제됐고 남아 있는 일부 문제 조항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얼마 전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보법 폐지보다는 부분 손질이 대법원 판결과 헌재 결정 취지에 맞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진보적 성향 의원들의 ‘개혁 독선’에 끌려가며 국민 대다수가 불안해하는 국보법 폐지로 몰고 가선 안 된다. 여당이 안보 불안을 잠재울 새로운 법안을 내놓고 야당과 협의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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