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안은 형법에 사실상 북한만 해당될 수 있는 ‘내란 목적 단체’ 규정을 두었을 뿐 북한을 위한 간첩죄는 물론 선전선동죄 및 이적단체구성죄까지 없앴다.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는 데 필수인, 북한의 사상홍보전에 대비한 국보법의 모든 규정을 없앤 것이다.
▼국보법 폐지는 치명적 안보공백▼
북한을 위한 간첩죄를 폐지하면 우리의 국방태세가 무력화될 것이므로 치명적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또 민주체제 전복을 막기 위한 선전선동죄를 폐지하면 북한은 무력침공 없이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전복시키는 전략전술에 박차를 가할 게 틀림없다.
지금도 북한은 한미동맹을 비롯한 몇 가지 요인 때문에 무력 적화통일보다는 남한 내부에서 체제를 전복시키는 체제 변혁 방법이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가 남한 내부의 체제 변혁까지 막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체제 변혁운동이 활성화되면 국민이 분열, 대립하고 극심한 사회불안이 조성돼 경제 회생은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수많은 합법적 ‘이적단체’들이 젊은층을 의식화하고 선전 수단을 제작·배포하면서 공개적으로 체제 전복운동에 나서도, 심지어 도심에 인공기를 꽂아두고 체제 변혁을 위한 서명작업을 벌여도, 직접 폭동을 일으키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단속할 수 없게 된다.
그처럼 불안한 나라에 어느 기업인이 투자를 하겠으며 어느 외국 기업이 들어오겠는가. 지금은 국민통합을 이뤄 경제 재도약의 기틀 만들기에 국민 역량을 집중할 시기다. 국민 분열을 극대화할 국보법 개폐 단행은 득책이 아닌 것이다.
국보법 개폐를 연기한다고 해서 인권침해가 발생할 리도 없다. 현행 국보법은 1989년 12월 민주당이 대체입법안을 제출하자 당시의 정부·여당이 1991년 5월 개정한 것으로 그 이후 아직 남용 사례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국보법을 개폐하고자 한다면 여야는 국회에서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협상해야 한다. 첫째, 여야가 합의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 갈등이 최소화된다. 정말 인권침해 소지가 국보법 개폐의 목적이라면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둘째, 체제 전복을 막기 위한 선전선동죄는 반드시 존치시켜야 한다.
여당 일부에서는 이를 형법의 내란선동죄나 여당 대안의 ‘내란 목적 단체조직 선동죄’로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내란선동죄는 국헌 문란 등을 목적으로 폭동을 선동해야 해당되며, 내란 목적 단체조직 선동죄는 국토를 빼앗거나 불법 절차로 헌법을 폐지하려는 목적의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하라고 선동해야 해당된다.
하지만 어느 바보 같은 체제변혁운동가가 폭동을 일으키고 불법 절차로 헌법을 폐지하자고 직접 선동하겠는가. 따라서 선전선동죄나 이적단체구성죄를 폐지해 버리면 우리는 북한과의 사상홍보전에서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진국도 체제전복 선동땐 처벌▼
외국의 예를 보자. 문명국들은 민주체제 전복을 위한 선전 선동을 처벌하는 법을 갖고 있다. 미국에는 형법 외에 ‘전복활동통제법’ 등이 있고, 프랑스는 형법에서 입헌제도 파괴·변경을 처벌한다. 분단국이던 독일은 민주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형법에 ‘민주법치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죄’를 두어 위헌 정당·단체의 조직, 헌법 질서에 반하는 문서 제작·반포, 위헌 조직의 표식 사용 등을 광범위하게 처벌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형법 제1장에 ‘반혁명의 죄’를 두고 있고, 북한은 형법 제13장에 ‘국가 주권 적대에 관한 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야의 성숙한 자세를 기대한다.
박상천 전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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