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기현]이중 기준

  • 입력 2004년 10월 20일 18시 29분


“미국의 외교는 이중 기준(double stand-ards)으로 가득 차 있다.” 최근 러시아 수뇌부는 미국에 대해 이런 불만을 토로한다. 똑같은 국제 현안에 대해 미국의 외교 원칙이 상대방이나 상황에 따라 판이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익과 직접 관련이 있는 현안을 다룰 때는 이러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학교에서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 미국의 이중 기준을 격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위협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선제공격론을 앞세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란 등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나라들은 언제 미군의 공격을 받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전 세계에서 대(對)테러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예방 전쟁’을 시작할 권리는 미국에만 있다. 체첸반군의 테러로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낸 러시아가 체첸에서 벌이는 군사작전에는 ‘예방 전쟁’ 대신 ‘인권’이라는 미국의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같은 테러세력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는 미국이 체첸반군 지도자들의 입국은 허용했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대처에서도 이중 기준이 드러난다. 미국이 정한 똑같은 ‘불량국가’인 북한, 이란, 이라크 등에 대한 미국의 태도도 차별적이고 편의적이다. 북한 핵문제가 한창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 때 미국은 북한을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세웠다. 그러다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러시아에서는 “그렇게 위험하다는 북한은 내버려 두고 이라크부터 침공한 기준이 뭐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었다.

▷국제정치뿐 아니라 국내정치에서도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중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자신에게는 관용을, 상대방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편’이 잘못을 저지르면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으로 슬그머니 넘어가지만 상대방의 실수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응징의 대상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내리는 수많은 판단 중에는 이런 이중 기준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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