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40대 出家入山

  • 입력 2004년 10월 21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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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집을 뛰쳐나가는 것을 가출(家出)이라 하고, 스님이 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은 출가(出家)라 한다. 속인(俗人)은 홧김에 대책 없이 집을 뛰쳐나가지만 출가자는 세상을 제도(濟度)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집을 나선다. 속인과 출가자는 산에 가는 마음가짐부터 차이가 있다. 속인은 경관 감상과 정상 정복을 위해 등산(登山)에 나서지만, 출가자는 산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산을 닮기 위해 입산(入山)하는 것이다.

▷출가에는 10대 전후의 ‘동진(童眞) 출가’와 40대 안팎의 ‘늦깎이 출가’가 있다. 어려서부터 절에 의탁해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출가하는 것이 동진 출가이고, 사회생활을 하다 삶에 회의를 느끼거나 득도(得道)에 대한 발심(發心)으로 속세와의 모든 인연을 끊고 출가하는 것이 늦깎이 출가다. 군대에서 나이가 아무 상관이 없듯, 절에서도 늦깎이라고 봐 주는 법은 없다. 절에서는 법랍(法臘·중이 된 햇수)이 곧 계급인 것이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사회 불안이 깊어지면서 40대 이상 고학력 늦깎이 출가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대처(帶妻) 종단인 태고종의 경우 올해 사상 최대인 281명이 스님이 되기 위한 첫 단계인 행자(行者) 교육과정에 들어왔는데 40대 이상이 3분의 2가 넘는다. 교장을 지낸 교육자, 병원 원장, 행시 출신 고위 공무원, 대기업 간부, 수녀 출신, 연극배우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해 출가한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비구(比丘) 종단인 조계종은 환란 이후 고령 출가자들이 늘어나자 2년 전 출가자의 연령을 40세로 제한했다.

▷행자 교육장에는 느닷없이 집을 나간 남편과 아내, 또는 자식을 찾기 위해 부모와 배우자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지만 출가자들은 뜻을 꺾지 않는다. 하지만 출가자의 고행(苦行)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제대로 스님노릇하기가 속세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서서히, 뼈저리게 알게 된다. 공부 또한 만만치 않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도피(逃避) 출가’는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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