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도시를 창조했다. 산업화는 현대의 복합도시를 창조했다. 도시는 인간 욕망의 집결지가 되었다. 성공을 향한 야망과 원초적 감각의 유혹, 화려한 구경거리와 은밀한 범죄가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흡입한다. 도시가 가진 욕망의 두 얼굴을 조감하기 위해 저자는 1893년 미국 시카고라는 시공간을 선택했다. 그해 미국 문명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시카고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이 세기의 이벤트를 배경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떠들썩한 개인 범죄가 일어났다. 박람회장 건설의 주역이었던 대니얼 H 번햄, 그리고 미국 최초의 연쇄살인범 H H 홈즈. 저자는 같은 시공간을 누빈 두 사람의 역정을 낱낱이 해부한다.》
○ 홈즈 “나는 내 안에 악(惡)을 가지고 태어났다”
누구나 준수한 외모에 진실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그를 좋아했다. 푸르고 깊은 그의 눈은 여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곧잘 촉촉이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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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시카고에 간 그는 곧 자기가 약사로 일하던 약국을 인수한 뒤 거리의 한 코너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창문이 없는 방이 많다는 것, 방음에 신경을 썼다는 것, 알 수 없는 버너가 설치돼 있다는 것.
이웃들은 그의 옆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자취를 감춰버리곤 한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사인 그에게서 마취제인 클로로포름 냄새가 나는 점은 이상하지 않았다. 박람회가 열리자 건물은 호텔이 됐다. 여자 손님만 받고 남자 손님은 정중하게 이웃 호텔로 안내됐다.
○ 번햄 “작은 일에는 사람의 피를 끓게 하는 마법이 없다”
1890년, 시카고트리뷴지 건물 앞에 수천명의 인파가 모였다. 세계박람회 개최도시로 시카고가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호가 터졌다. 건축 책임자인 번햄은 막막했다. 3년 동안 ‘박람회 도시’ 하나를 세워야 했다. 경쟁도시 뉴욕의 박람회 유치단장 드퓨는 ‘파리 박람회와 대등하면 성공, 못하면 미국인 전체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계도가 발표되고 남겨진 건설기간은 27개월, 부지 아래에는 4m 깊이의 모래수렁이 있었다. 박람회 건물 공사현장은 폭풍에 무너지고 눈 때문에 또 무너졌다.
그러나 1893년 5월 1일, 박람회가 개막되자 사람들은 눈을 의심했다. 푸른 하늘과 호수를 배경으로 흰 계획도시(화이트 시티)가 눈앞에 나타났다. 세계 최초로 높이 92m의 돌아가는 놀이기구가 공개됐다. 밤에 수백만 개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천국의 환상을 보았다”고 했다.
○ 그 이후… 번햄과 홈즈 닮은 점과 다른 점
번햄과 홈즈,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았다. 둘 다 준수한 외모에 푸른 눈을 가졌으며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저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각각 20세기를 향해 질주하는 미국의 거대한 역동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동성을 실현하는 방법에서 둘은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번햄은 “할 일을 마친 뒤 생명을 연장시키는 건 관심 밖”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회적 책임을 의식했다. 반면 홈즈는 개인적 성공에 집착했으며 방법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의 둘째 부인은 “야망은 그의 인생에서 저주였다”고 말했다.
홈즈의 행각은 조수였던 핏첼을 살해한 뒤 보험금을 타려다 꼬리를 밟혔다. ‘박람회 호텔’을 수색한 경찰은 소각로에 가득한 뼈를 발견했다. 홈즈는 2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지만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형에 처해진 홈즈의 관은 유언에 따라 시멘트로 채워졌다. 무덤도 6m 깊이로 파고 시멘트로 덮었다.
그후 미국식 ‘메갈로폴리스(거대도시)’는 전 세계에 전파됐다. 박람회도, 연쇄살인도 함께였다. 원제 ‘The Devil in the White City’(2003년).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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