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달콤 쌉싸름한 초콜릿’…형부가 되어버린 연인

  • 입력 2004년 10월 22일 17시 07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272쪽 8000원 민음사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54·사진)은 원래 교사였지만 아동극본과 시나리오까지 써 오다가 1989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펴내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33개 언어권에서 450만부가량 팔려 나갔다. 1992년 당시 에스키벨의 남편이었던 알폰소 아라우가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에스키벨은 이후 아라우와 이혼했지만 현재 그와 함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을 영화화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형식은 첫 출간 당시에는 아주 특이했다. ‘장미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몰레’처럼 군침 도는 갖가지 요리를 만드는 법을 12개의 장마다 제시해 놓고 거기에 얽힌 사랑 이야기들을 던져 주는 형식이었다.

1910년 멕시코 시골의 데 라 가르사 가문에는 세 딸이 있었는데 막내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멋진 남자 페드로를 만나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사랑의 전류가 일어나는 체험을 한다. 페드로는 그 무아경을 잊지 못해 티타의 어머니 마마 엘레나에게 청혼을 넣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막내딸만은 죽을 때까지 미혼인 채로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철칙이 가문에 있었던 것이다. 대신 마마 엘레나는 “맏딸 로사우라와의 결혼은 괜찮다”고 제안하는데 페드로는 고민 끝에 “티타 곁에 있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타고난 요리 감각을 갖춘 티타는 페드로에 대한 사랑, 육체의 욕망, 체념과 낙담의 감정 등을 저도 모르게 음식에 투영하게 된다. 가령 언니 로사우라의 결혼식 때는 눈물로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만드는데 이를 먹은 하객들은 모두 ‘속이 뒤집어져’ 집단 구토를 하게 된다.

소설은 지엄한 어머니 마마 엘레나의 그늘 아래서 ‘형부가 돼 버린 연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티타가 요리로 슬픔을 달래며 사랑이 완성될 순간을 기다리는 긴 여로를 다루고 있다.

이 과정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티타의 조카손녀의 목소리를 통해 묘사된다. 현실적으로 아귀가 안 맞는 대목을 시치미 딱 떼고 빠져나가는 능청스러움, 젊은 시절 티타 자매의 육체적 관능미에 대한 능란하고도 유연한 묘사, 티타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과 반응을 천연덕스럽게 과장한 데서 나온 익살과 신비스러움 같은 것이 작품 전편에 흘러넘치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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