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3년 팝아트 거장 리히텐슈타인 탄생

  • 입력 2004년 10월 26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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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손을 거친 모든 예술작품은 근본적으로 인위적(arti-ficial)이다. 그러나 예술가 스스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인위적이라는 단어엔 부자연스럽다는 뉘앙스도 깔려 있으니.

팝아트의 대표적 인물인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 그는 “나의 작품은 가장 인위적이다”라고 스스로 공언했다.

리히텐슈타인이 오늘 태어났다. 1962년 뉴욕 맨해튼의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 그의 작품이 처음 전시됐을 때 관람객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맙소사, 이게 예술인가.”

‘미키마우스’와 ‘도널드덕’, ‘포파이(뽀빠이)’가 등장했고 만화처럼 말 풍선을 그려놓고 대사를 적어놓았다. 실제 인쇄한 것처럼 보이려 했는지 인쇄물을 확대했을 때 나타나는 점(dot)까지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전시회는 본격적인 팝아트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60년대를 전후해 영국에서 탄생한 팝아트는 미국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리히텐슈타인과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작가들은 상품 광고, 고속도로 빌보드, 교통표지판, 코카콜라를 미술에 끌어들였다. 산과 들, 강은 관심이 없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시절, 리히텐슈타인은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라이프 매거진은 1965년 리히텐슈타인을 다루면서 “그는 미국에서 최악의 예술가인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역설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예술가가 탄생했음을 의미했다.

무엇이 순수예술이고 무엇이 대중예술인가. 팝아트는 위계적이고 이분법적인 구조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팝콘을 먹으면서 감상할 수 있는 미술”이 그들의 모토였다.

당시 순수미술계에선 “팝아트 작가들이 미국 미술계가 성취한 것 전부를 창 밖으로 버리려 한다”고 반발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졌다. 애초에 팝아트를 배태하고 키운 것은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미국이었다.

오히려 좌파의 평가가 더 그럴듯하다. 피상적이고 퇴폐적이며 자본주의를 무분별하게 재현한 반동적 현실주의라는.

리히텐슈타인은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었고 그의 작품은 천문학적인 가격에 팔렸다. 누군가의 말처럼 ‘가장 미국적인 작가’였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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