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 시대였더라면 문익점이 목화씨를 몰래 들여와 재배에 성공했더라도 씨앗을 퍼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국 농무부는 최근 유전자 조작 씨앗 회사와 공동연구를 통해 면화를 재배하더라도 목화송이만 거둘 수 있는 품종을 개발했다. 농부가 이 품종을 재배해 씨앗을 채취해 본들 쓸모가 없다. 씨앗이 성숙할 무렵, 조작된 유전자가 작동해 싹을 틔우는 데 필요한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결국 농가는 유전자 조작 목화씨를 계속 사들여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첨단기술 제품의 무역량이 증가하면서 첨단기술 육성과 대외(對外) 유출 방지에 각국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을 개발해 지키려는 자와 훔치려는 자의 경쟁은 열전(熱戰)을 방불케 한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첨단기술 유출 기도 단계에서 국가정보원에 적발된 사례가 51건이나 된다고 한다. 금년에만 11건에 이른다. 분야별로는 반도체, 휴대전화,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등 정보기술(IT) 부문의 주요 기술이 73%를 차지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신기술이 경쟁국으로 유출되면 경제는 물론 국가안보에도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
▷최근에는 막대한 스카우트비(費)를 주거나 연봉을 올려 주는 방법으로 연구개발 직원을 빼내 오는 수법이 많이 쓰인다. 첨단기업들은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일정 기간 이직(移職)을 금지하는 서약서를 받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검찰이 최근 외국기업으로 이직하면서 기술을 빼내 가려던 반도체업체와 제조장비업체 직원 3명을 적발했다. 과학기술인들은 기술 유출과 이직을 둘러싼 분쟁의 대부분이 직장 만족도가 떨어지는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기술 매국(賣國)을 규탄하기에 앞서 발명에 대한 보상과 처우가 적절해야만 기술 유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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