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용관]외국언론의 정부비판에는…

  • 입력 2004년 10월 26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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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핵무기로 무장한 김정일 정권보다 자유언론을 더 위협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열린우리당의 4대 법안은 마치 평양에서 쓴 것 같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의 25일자 사설을 읽으면서 “외국 언론이 이렇게까지 한국 언론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니…”라는 생각에 전율까지 느꼈다.

정부의 공식 홍보 창구인 국정홍보처는 사설 내용이 알려진 당일 “당에서 먼저 대응하는 게 순서”라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가 26일에야 “남의 나라 내정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자 모욕이다”, “항의 서한을 보내든 반박문을 게재하든 어떤 형태로든 대응하겠다”며 뒤늦게 허둥대고 있다.

이 배경에는 국정홍보처의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초동대응에 대한 열린우리당측의 불만표출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 신문에 최종적으로 어떤 대응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외국의 유수 언론이 이처럼 ‘거친’ 표현으로 한국의 언론 환경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최근 국내에서는 “동아 조선일보는 역사의 반역자”(이해찬 국무총리) “동아 조선일보는 동서 화해와 남북 화해를 저해했고 권력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등 정권 고위 관계자의 비판언론 공격 발언이 꼬리를 물었다. 혹시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들의 발언에 주목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정부여당 내에서는 “국내 언론이 잘못 쓴 것을 외국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고 외국 언론이 쓴 것을 다시 국내 언론이 받아쓴 것 아니냐”는 안이한 시각으로 이번 사태를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도 외국 언론의 지나친 한국 정부 비판을 보면서 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생각하려 하는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날을 세운 비판 언론 공격 발언이 한국 언론환경의 척박함을 가늠케 했고, 결국 이 신문의 공격적 사설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란 점에는 왜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정용관 정치부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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