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86년 자유의 여신상 제막

  • 입력 2004년 10월 27일 18시 34분


1886년 10월 28일 ‘자유의 여신상’ 제막식이 열렸다.

여신은 오른손에 횃불을, 왼손에 미국 독립일인 ‘1776년 7월 4일’이 적힌 명판을 들고 미국 뉴욕항 입구 베들로섬(리버티섬)에 우뚝 섰다.

1884년 7월 프랑스에서 제작된 여신상은 1885년 6월 해체된 후 ‘이제르’호에 실려 뉴욕에 도착했다. 1886년 받침대가 완공됐고 4개월간 조립과정을 거쳐 제막식이 거행됐다.

여신이 딛고 선 받침대에는 ‘너희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들을/혼잡한 해안에 지쳐 쓰러진 가엾은 족속들을/머물 곳 없이 폭풍에 시달린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나는 황금빛 문 옆에 서서 횃불을 높이 들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여신은 지친 사람을 넉넉히 품을 만큼 크다. 횃불 끝까지 더한 여신상의 높이는 46m. 머리 부분의 길이만 8.5m에 이른다.

자유의 여신상이 처음 구상된 것은 1865년. 프랑스 진보적 정치인들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맞아 동상을 선물하기로 했다. 이들은 미국을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세운 모델국가로 여겼다.

여신상의 원래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 군주제와 싸우고 있는 유럽을 계몽의 길로 이끈다는 의미였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등 여러 나라 사람이 궁핍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항해 도중 10% 정도가 숨지는 고난의 여정을 거쳐 뉴욕항에 도착한 이민자의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이 여신상. 그래서 여신상은 ‘민주 공화제’보다 ‘이민자의 어머니’로 상징이 바뀌었다.

이민자가 늘자 백인 중심 사회를 유지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1924년 앵글로색슨, 신교도가 아닌 사람의 이민을 제한하는 법이 제정됐다.

시인 토머스 알드리치는 1895년 여신이 이민자를 위해 횃불을 들지 말고 그들을 저지해야 한다는 시를 발표했다.

‘…거칠고 잡다한 무리들이 몰려든다/…/자유여 하얀 여신이여/자유의 선물을 낭비하기 위해/신성한 너의 문을 두드리는 자들을/무쇠와 같이 강인한 손으로 저지하라.’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