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총리의 역사인식을 개탄한다

  • 입력 2004년 10월 28일 18시 28분


이해찬 국무총리가 28일 답변에서 다시 ‘동아일보’를 거론했다. 이 총리는 “조선, 동아일보를 역사의 반역자”라고 했던 열흘 전 베를린 발언이 “평소의 소회”라고 밝히고 “동아일보는 1974년 유신 때 자유언론을 수호하던 수많은 기자를 집단 해고하고 지금도 복직을 안 시키고 있으므로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했다.

한 나라 총리의 역사 인식과 이를 표현하는 수준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어 개탄스러울 뿐이다. 유신 치하에서 ‘동아일보’는 세계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광고탄압을 받으면서까지 독재에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의 해고라는 비극을 감내해야 했다. 언론탄압에 저항한다는 대명제는 같았으나 투쟁 방법에 대한 의견이 달랐기에 비롯된 아픔이고 불행이었다.

그렇다고 자유 언론, 독립 언론으로서의 필봉이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정권 하에서도 치열하게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했다. 그 정신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지금도 살아 있다고 본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반역’인가. 그런 논리라면 “유신 본당을 자처했던 김종필 전 총리 밑에서 교육부 장관을 한 이 총리가 반역”이라는 한 야당 의원의 주장에 총리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총리라면 더 넓고 엄정한 눈으로 역사를 봐야 한다. 젊은 날 민주화의 격랑을 헤쳐 왔다는 이 총리가 당시 상황에 대한 역사적 통찰은 없이 이런 식으로 막말을 하는 것은 권력에 기댄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총리의 이런 행태는 그가 이끄는 내각과 몸담고 있는 정권의 품격까지도 떨어뜨리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나라 형편이 그럴 만큼 한가한지도 의문이다. 오죽하면 여당 안에서까지 비판의 소리가 나오겠는가.

어느 나라, 어떤 정권 아래에서도 독립 언론, 비판 언론은 존재한다. 제대로 된 민주정부라면 이를 용인하고 비판과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실정(失政)의 책임을 언론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럴 만한 포용력도, 자신감도 없다면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나라를 끌고 갈 자격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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