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정부질문 파행]대치정국에 기름붓는 ‘뻣뻣한 총리’

  • 입력 2004년 10월 28일 18시 31분


28일 국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는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최근 동아,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을 비난한 것을 두고 이 총리와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 의원간에 격렬한 설전이 벌어졌다.

이 총리는 시종 고압적인 자세로 ‘동아, 조선일보는 역사의 반역자’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고 비난하면서 한나라당의 사과 요구를 일축했다.

먼저 안 의원이 “두 신문이 권력의 눈에 거슬린다고 매도해도 되느냐”며 “동아와 조선이 한때 잘못한 부분도 있으나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그것의 수백배”라며 다그쳤다.

이 총리는 작심한 듯 “동아, 조선일보는 1974년 유신정권 때 자유언론을 주장하던 수많은 기자들을 해고하고 30년 동안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맞대응했다.

안 의원이 말머리를 돌려 “총리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오만하고 독선적인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사과를 촉구했다. 이 총리는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원을 들여온 정당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안 의원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흠집 없는 사람이나 정부 정당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으나 이 총리는 “한나라당은 다수의 위력으로 대통령을 탄핵해서 헌법재판소에 회부하지 않았느냐”고 쏘아붙였다.

이에 안 의원은 “헌법체제에 도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이 총리가 역사를 퇴보시키는 장본인”이라며 “망언에 어떤 책임을 지겠느냐”고 물었다. 이 총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유다. 책임질 사안은 없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어 안 의원이 “막가자는 거냐. (총리 직을) 그만두라”고 일갈했지만 “의원 주장에 거취를 결정할 사람이 아니다”란 냉소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이 총리는 이후 본회의장 앞에서 만난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 의원이 “사과하시지요”라고 말하자 “나는 배알도 없는 줄 알아요?”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대변인을 지냈던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의원은 논쟁을 지켜본 뒤 언론에 배포한 발언 자료를 통해 “5·16쿠데타의 주역이고 ‘유신본당’인 김종필(金鍾泌) 전 국무총리 아래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일한 이 총리는 역사의 반역 아니냐”고 힐난했다.

이 의원은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보도한 일도 역사에 대한 반역이냐”고 되물으며 “지도자의 언동은 균형과 품격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대한민국에 정치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 총리 스스로 사퇴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도 “대체 왜 그런 거야”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우리나라는 다 정상인데 고위층의 막말이 문제다. 비본질적인 말은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은 “총리가 국회에서 이렇게까지 감정적인 언사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총리답지 못한 언행을 한 데 대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사과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은 또 “정치지도자는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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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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